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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PG/2021

[CoC] Pandora Unboxing : 가은예빈

* 매실

 

 

KP l 매실

가은 l 예빈

 

 

가은이와 연락이 되지 않은지도 2년. 오지 않을 소식을 기다리며 밤을 지새우는 일은 지겹게 되었습니다.

5월은, 아무도 바다를 찾지 않는 계절이죠. 당신은 편지 한 통을 받습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네, 괜찮을 때 들러주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바닷가에 머물게 되었다는 사람의, 숨이 막힐 정도로 지겨운 전언.

 

 

 

 

 

 

 

▼ Chat Log 

 

*
 
이윽고 지옥으로 내려갈 때
 
그곳에서 기다리는 부모나
 
친구에게 난 무엇을 가지고 갈까.
 
판도라 언박싱
 
당신이 받은 편지. 온전히 가은의 필체입니다.
 
그를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당신만이 그러한 연락을 받았다는 답이 돌아옵니다.
 
그는 당신의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당신은 그의 무엇이었을까요.
 
답을 들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회라고 말하기에는 잔인하겠죠.
 
마음을 담아, 가은.
 
질 좋은 종이로 이루어진 편지 봉투와 편지지.
 
편지에는, 병에 걸려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과
 
절벽 위의 저택에서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거 젹혀 있습니다.
 
주소지를 살펴보면, 당신이 머무는 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바닷가 마을입니다.
 
예빈언니, 어색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언니를 초대하기로 했어요.
 
산만한 커브 길로 이루어진 길 위를 지나, 차로 이동할 수 없는 오솔길을 걸어서
 
오랜 시간이 흘러 그의 자택에 도착합니다.
 
시간은 벌써 오후 여덟 시, 해가 저물기 직전입니다.
 
예빈:...꽤나 먼 곳이네. (저무는 해를 바라보고 자택 문을 두드린다) 계신가요?
 
숲에서 걸어 나오자 펼쳐진 갈대밭을 지나,
 
운동장 크기의 갈대밭 위에 서 있는 삼층짜리 건물의 앞에 다다릅니다. 그 뒤는 해안선이네요.
 
절벽 위의 집.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도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없습니다.
 
벽돌로 세워진 저택은 담쟁이 덩굴로 뒤덮이고, 어두운 곳마다 거미줄이 가득합니다.
 
적어도 삼 년 정도는 관리되지 않았다는 인상을 물씬 풍깁니다.
 
예빈:...... (관리되지 않은 황폐한 저택을 눈으로 살피다가 천천히 문을 열어본다.)
 
다행히 문이 열려있네요.
 
문고리를 당기면, 어둠에 잠긴 긴 복도가 나타납니다.
 
소설의 도입부 같다고 여겼을지도 모르겠네요.
 
복도 너머에서, 희미하게 음악 소리가 들려옵니다.
 
예빈:이런 곳에서 지내고 있었던 거니? 혼자서.. (음악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걸어간다.)
 
이런 곳에서 혼자 지내고 있던걸까요.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던 가은이 보내온 편지. 절벽 위의 집.
 
예빈은 천천히, 음악 소리를 따라 어두운 복도를 걷습니다.
 
암막 커튼으로 가려둔 창문에서 석양이 새어 나옵니다.
 
음악 소리가 커지고..
 
홀에 도착하면, 가은이 벽난로 앞 소파에 앉아 있습니다.
 
테이블 위엔 차와 다과가 준비되어 있네요.
 
한 켠에는 레코드 플레이어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예빈:(가은이에게 다가가) 미안해, 가은아. 노크를 했는데 답이 없어서... 편지 받았어.
 
가은:...아, 언니. (고개를 젓고는 엉거주춤하게 일어난다. 앞자리를 권해주며) 음악 소리 때문에 못..들었나봐요. 혹시 올까 싶어서, 이것저것 준비하기도 했구요. 퀸즈빈즈에 비할 건 못 되지만... ..어쨌든 음..
와줘서 고마워요. (가볍게 웃고는 다시 소파에 앉는다.)
 
예빈:아프다며~... 무리하지 마. (권하는 자리에 앉고) ...... 왜 이런 저택에서 지내는 거니? 가족이나 다른 아이들은 어쩌고.
 
가은:아, 하나씩. 하나씩이요. ... (곤란하다는 듯 웃다가) 걱정을 끼치고싶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 말하지 못하고 조금.. 떨어져지내려던건데, 막상 혼자가 되고나니까... ..아하하. 그래서 저도 모르게 편지를 보낸걸지도 모르겠어요.
 
예빈:...기분을 모르는 건 아냐. 나도 한때 모두와의 연결고리를 끊어내고 싶었던 적이 있었으니까. (읊조리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찻잔을 들어) 그래도 편지를 보내줘서 고마워. 이대로 가은이 네가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졌다면.. 역시 그 결말은 안타까웠을 테니까.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는다) ......가은아. 병은 어때? 정말.. 고칠 수 없을 정도니?
 
가은:..그렇죠? 예빈 언니는 저를 잘..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가장 먼저 생각이 났을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시선을 이리저리 굴란다. 누구에게도 말할 일이 없어 묻어둔 지난날 들어온 이야기를 떠올리려는 듯. )아, 주치의의 말로는..일단 그래요. 그래서 입원하고 있기보다는 혼자 조금 쉬려고.. ... (어깨를 으쓱한다.)
여기까지 오느라 많이 힘들었죠. 그래도..음.. 멋진 곳이지 않나요? 이전 집주인이 두고간 책도 한가득있어요. 서재가 있는 집은 처음이라~ 한동안은 책만 읽기도 했네요. (조잘거리며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게 말을 잇는다.)
 
예빈:하긴... 가은이 넌 처음 만났을 때도 혼자서 모든 걸 끌어안으려 했으니까. (자신의 친구가 아닌 내게 연락한 것도 당연한 인과일까, 생각하며 뒤이은 말에 가만히 네 모습을 응시한다. 잊혀진 누군가의 소원을 받기 전 불치병을 앓고 있었던 지난 날이 겹쳐 보여서) ...그렇구나, 혼자 쉬려고 이 곳에...
...응 멋진 곳이야. 솔직히 놀랐는걸. 조금은 관리도 해두는 편이 좋겠지만~...? (그저 웃는 얼굴로 맞장구치고 차를 다시 한 모금 마신다.)
 
가은:... (예빈의 말에 입꼬리만 당긴다.) 혼자가 아닌데, 자꾸 혼자 책임지려고 하는게..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쳐지지가 않네요. 벌써 많은 시간이 흐르기도 흘렀는데. ( 차를 마시는 것을 보다가) ...아, 그렇지. 언니도 온 김에, 며칠 쉬었다 가면 어때요. ...금방 돌아갈 거였나요?
 
예빈:습관은 바꾸기 어렵지~ (낮게 웃음을 터트리고 눈을 두어 번 깜빡인다) 아, 그래도 괜찮아? 사실 내 쪽에서 물어볼 생각이었어. 생각보다 멀기도 했고 바로 돌아가는 건 아쉽잖아.
 
가은:그럼요. 2층에.. 손님방을 비워둔 참이에요.
 
대화가 저물어갈 즈음,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합니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졸음이 쏟아지네요. 먼 길을 오느라 피로가 쌓인 걸까요?
 
예빈:하암... (작게 하품을 하고) 벌써.. 피곤한가? 환자를 앞에 두고 괜히 미안해지네. 2층이라고 했지? 손님방.
 
가은:괜찮아요. (하품하는 것을 보다가 몸을 일으킨다. 잠시 창 밖을 응시하다가 예빈에게 다가가요) 안내해줄게요.
 
예빈:응? 아냐, 괜찮아 쉬어~ 내가 찾아갈게. (손을 내젓고 짐가방을 들고 일어선다.)
 
묘한 졸음에 일어서는 것도 버겁게 느껴지는걸요.
 
가은:그으럼, 짐이라도 제가 들어드릴게요. 여기서 지내고 오히려..몸이 좋은걸요?
 
예빈:(왜 이렇게 졸리지......) 그래? 그럼.. 부탁할게. 무겁진 않으니까.
 
고개가 힘 없이 기웁니다. 휘청이며 계단을 오릅니다. 음악 소리가 멀어집니다.
 
이 층 복도의 가장 마지막 방문을 열고, 적색 벨벳 커튼이 둘린 캐노피 침대 위에 쓰러지듯 눕습니다.
 
몸을 일으키기 힘들 정도로 무거운 졸음이 쏟아지고,
 
가은:잘 자요, 예빈 언니. 짐은 옆에 놔둘게요.
 
예빈:으, 응. 가은... (말을 채 끝맺지도 못하고 잠든다..)
 
그의 이름을 한 번 떠올리면, 암전이 찾아옵니다.
 
... ...
 
달이 뜨는 밤.
 
비스듬히 열린 창문 틈으로 흔들리는 파도와 바람 소리.
 
듣기 판정이 가능합니다.
 
예빈: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64
판정결과: 실패
(아아아악)
 
그날따라 물이 만들어내는 소음이 유난하여,
 
마치 사람의 중얼거림과 발소리 같았습니다.
 
고요한 저택. 하지만 귀를 기울이면 그 아래 수많은 소음들이...
 
...
 
두 번째 날
 
익숙하지 않은 쿠션의 질감. 코끝에서 감도는 희미한 먼지 냄새.
 
어디선가 이름 모를 새가 울고 있습니다.
 
시린 아침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둘러보면, 손님용이라는 말이 물색하게, 사용감이 없는 가구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침대와 협탁, 옷장, 책상... 침대 아래에 예빈의 짐 가방이 놓여있습니다.
 
조금 어수선해보이기도 하네요. 깔끔하게 청소하는건 어려웠던걸까요.
 
예빈:어라, 나 언제 잠들어서... (잠시 어제 일을 되짚어보고 고개를 돌려 시선으로 방을 휘 둘러본다.)
...정말 아무도 오지 않았던 걸까. 이 방에. (일어나 잠든 곳인 침대를 확인해본다.)
 
붉은 커튼이 둘린 캐노피 침대 입니다.
 
침구들은 낡아빠졌으나.. 최근에 세탁한 티가 납니다.
 
침대 아래에 편지 한 장이 떨어져 있습니다.
 
예빈:......편지? (주워서 내용을 읽어본다.)
 
편지를 주워듭니다. 상단에 쓰인 날짜는 10년 전의 5월 15일.
 
보내는 사람은 퓌라. 받는 사람은 데우칼리온.
 
편지를 읽어보면, 평범한 생일 파티 초대장이네요.
 
하지만 어째서 이토록 불길할까요?
 
예빈:10년 전... 이 저택의 주인이었던 사람일까? (평범한 내용임에도 익숙하리만치 느껴지는 불길함에 편지를 멀리 치워둔다.)
며칠은 쓸테니 방을 청소해두는 게 좋겠지. (협탁을 보러 간다.)
 
침대 옆의 협탁 위에는 램프 하나와, 낡은 동화들을 엮은 조잡한 문고본이 놓여있습니다.
 
예빈:(꾹 눈가를 누르고) ...피곤하네, 41시간을 운전해서인지. (램프를 켜본다.)
 
램프는 작은 빛을 밝힙니다. 아침이 밝아온 탓에 희미하게만 느껴집니다.
 
예빈:음~... 아침이니까 켜둘 필요는없겠지. (희미한 램프 빛에 도로 끄고 문고본을 든다.)
 
낡은 문고본, 혹시라도 페이지가 흩어지지 않게 조심해야 할 것 같네요.
 
예빈:(완전 조심조심.. 안을 열어본다!)
...... (동화 중에 하필 또... 불길함X2)
기분 탓...이려나? (클리셰적인 말을 하고 지나쳐 옷장을 벌컥 연다.)
 
아침부터 읽을만한 동화는 아니었네요.
 
옷장 문을 열면, 깨끗한 수건이나 가운 몇 벌이 걸려있습니다.
 
예빈:이런 곳에선... (괜히 가운 주머니를 뒤적여본다.)
 
예빈을 위해 준비해둔 것일까요. 가운 주머니는 비워져있습니다. 옅은 섬유유연제 향이 납니다.
 
예빈:새로 꺼내둔 걸까. (기분좋은 향에 만족하고 옷장을 닫는다. 이젠 책상 쪽으로!)
 
책 한 권이 놓여있습니다. 제목이 닳아 알아보기 어려운 양장본이네요.
 
하편이라고 적힌 금박만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예빈:으음 상편은~... (찾아보고 없으니 이거라도 펼쳐 읽어본다.)
 
책을 펼칩니다. 예빈은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언어를 봅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그 언어를 막힘없이 읽어내려갑니다.
 
이계의 신, 저주받은 유물, 사람의 내면을 갉아먹는 주술과 죽은 육신을 되살려내는 금기의 비법.
 
아침을 알리며 지저귀는 새소리 너머로 어디선가 높이를 알 수 없는 노랫소리와 방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불온하며 소름 끼칩니다.
 
...
 
페이지를 덮으면,
 
이름모를 새의 울음소리와 함께 현실로 돌아옵니다.
 
짧고도 강렬한 경험이 끝났을 때, 당신이 기억하는 것은 목차 페이지 한 줄 뿐입니다.
 
저주받은 상자.......p. 134 (上권 수록)
 
예빈:저주받은 상자... (오로지 기억나는 한 줄을 멍하니 중얼거리고) 이상한 책이야.
...이런 기분 두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걸. (자신의 짐가방을 한번 정리하고, 방을 나서서 가은이를 찾는다) 가은아?
 
방 밖으로 향합니다. 2층 복도에도 햇살이 희미하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계단은 위로 향하는 것이 하나, 아래로 향하는 것 하나.
 
아래 층에서 희미하게 음악 소리가 들려옵니다.
 
예빈:(2층에는 손님방 뿐인가요?)
 
예빈이 머무는 방 외에도 다른 문 두 개가 더 있습니다.
 
예빈:가은아? 안에 있어? (다른 방문들을 노크해본다.)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답은 없습니다. 이미 일어난걸까요?
 
예빈:아침부터... 일찍 일어나네. (갸우뚱하고 아래로 내려간다.)
 
갸우뚱. 아래 층으로 내려갑니다.
 
1층. 가은은 어제와 같은 홀의 소파에서 당신을 맞이합니다.
 
테이블 위, 간단한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있네요. 시리얼과 우유... 말린 과일...끝입니다.
 
예빈:(가은이의 영양은 괜찮은걸까, 생각하며 입술을 뗀다) 좋은 아침~ 가은아. 부지런하네.
 
가은:아, 좋은 아침이에요. 잘 주무셨어요?
아침을.. ....차려드려야 할 것 같은데, 쌀이 마침 떨어졌지 뭐예요.
그래서 별거 없네요.. (민망하다는 듯 그릇을 밀어준다)
 
예빈:응... 어제 그러고 잠들어서. (머쓱) 난 괜찮아. 설마 가은이 네가 평소에 이런 것만 먹고 지내나 싶어서 걱정했던 건 있지만?
떨어진 거라면 나중에 내가 다시 사오면 되니까~ (그릇을 받아들고 자리에 앉는다.)
 
가은:에이ㅡ 설마요. (웃고는 시리얼 박스도 밀어주고 제 그릇에는 우유를 부어요) ..곧 비가 올 것 같아서. 당분간은 이걸로 참아야할 것 같기는..하지만요.
 
예빈:그래? 비가 많이 오나 봐. 외진 곳이기도 하니까... (끄덕이고 자신의 그릇에 시리얼을 채워 우유를 붓는다) 여기 네 말대로 책이 많더라.
 
가은:(고갤 끄덕인다.) 아직 못 본 책도 많아요. ..아, 아침 식사가 끝나면 대충.. 여기 좀 소개시켜 줄까요? 그렇게 넓진 않지만, 해가 지면 많이 어두워서. 길을 잃을지도 모르니까..
 
예빈:아, 그럼 좋지. 부탁할게. (길을 잃을 정도인가? 분명 넓은 집이긴 하지만... 생각하고 시리얼을 먹는다.)
 
가은:(길을 잃을 정도는 아니지만.. 물건이 너저분한 탓에. 저도 천천히 시리얼을 먹기 시작한다. ) 아, 빵이랑 잼도 있는데, 조금 가져다 드릴까요?
 
예빈:음... (먹는다 1 먹지 않는다 2 2)
괜찮아. 이것만 해도 배부른 걸 뭐~ (시리얼이 생각보다 맛있었나 보다 냠냠냠)
 
가은:(냠냠냠) 음, 그럼 먹고나서.. 1층부터 소개시켜드릴게요. 1층에는 서재가 있거든요. (다 먹은 그릇을 내려두고는 예빈을 물끄러미 보고있다.)
 
예빈:(빠르다... 예빈은 꼬박 20분의 시간을 걸려 시리얼 그릇을 비운다) 서재 좋지~ 재밌었던 책 있으면 추천해줄래?
...... (한번 입에 넣을 때 20번은 씹었던 듯)
 
가은:....(꼭꼭 씹어드시는구나) 좋아요. (일어나서 작게 기지개를 켠다.) 이 쪽이에요.
 
예빈:(아픈 사람같지 않네~ 생각하며 훈훈하게 따라간다.)
 
아픈 사람이라기엔 이전처럼 기운을 내고 있는 모습이네요. 예빈이 와준 덕일까요.
 
복도를 걸어, 서재로 향합니다. 커튼 틈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눈부십니다.
 
예빈:(기운을 차린다니 다행이지만... 밝은 빛에 팔을 들어 눈가를 가린다.)
 
하지만 바깥을 보면 새카만 구름이 멀리 보입니다. 하늘은 흐리네요. 정말 비가 올지도 모르겠어요.
 
희미한 불빛들,
 
책장에 덧칠된 녹색 페인트는 벗겨져 나뭇결을 드러내고,
 
뽀얀 먼지가 앉아있으나, 크고, 작고, 두껍고, 얇고, 무겁고, 가벼운 수백 권의 책들이 확고한 분류에 따라 진열된 광경은 사람의 마음을 쉽사리 풍족하게 만듭니다.
 
책장은 총 네 개. 책의 종류는 다양해보입니다.
 
예빈:전부 몇 권이야...? 정말 많네, 책. (첫번째 책장으로 다가간다.)
 
가은:세어보..지는 못했어요. 그냥, 그날그날 눈에 들어오는 책을 보거나해서.
 
첫번째 책장으로 다가갑니다. 여러가지 책이 진열되어 있네요.
 
나름대로 분류가 되어 진열된 것 같기는 하네요. 아무거나 한 권 뽑아볼까요?
 
자료조사 판정입니다
 
예빈: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60
판정결과: 실패
(왜...)
쓸.. 까? (행운을 꺼내)
 
네미 (GM):오늘 예빈이 다이스 맵다
 
아침과는 어울리지 않는 동화로 하루를 시작해서일까요. 딱히, 책들이 눈에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서재에 왔으니 한 권, 쓱 뽑아봅니다.
 
이 책에 눈에 들었던 이유는 은빛 열쇠 모양의 책갈피가 반짝인 탓이겠죠.
 
예빈:(예쁘다... 책갈피가 끼워진 페이지를 펼친다.)
 
예쁜 책갈피는 책의 중앙에 끼워져 있었네요. 페이지를 열어보면...
 
예빈:...유명한 신화잖아? (한국인이라면 또 모를 수 없는 이야기를 반갑게 읽는다.)
 
가은:(한국인이라면 또 모를 수 없는 이야기)
...아, 저도 마침 그 책을 읽고 있었거든요. ( 예빈의 근처에 서서는 슬쩍 책을 내려본다)
 
예빈:(아무래도 그런 편이죠...)
아 가은이 네가 읽고 있었던 책이야? 어쩐지~ (열쇠 모양이 신경쓰여서 책갈피 슬쩍 가져가려다가... 돌려둔다.)
 
가은:(가볍게 웃고는) 그게 열려서는 안되는 상자였다면 신은 왜 상자를 존재하도록.. 만들었을까요? 생각해본 적 있어요?
 
예빈:음... (곰곰) 그러게. 예전에 읽었을 땐 별로 생각해본 적 없어.
그게, 신은 제멋대로잖아? 시험하고 싶었을지도 모르지. 신탁을 거스르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웃고 싶었던 건지...
 
가은:시험하기 위해서..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르면서 열고싶어 하니까.
그럼 언니. 만약 상자를 열 수 있는 단 하나의 열쇠가 그 상자 안에 있다면, 언니는 어떻게 하고 싶어요?
 
예빈:...? (잠시 혼란에 빠지고) 기묘한... 질문이네. 애초에 열쇠가 안에 있다면 상자는 열 수 없잖아?
......정말 상자를 열 단 하나의 방법이 열쇠 뿐이고, 어떻게든 상자를 열고 싶은 거라면 나는.. 신을 원망하려나. 나에게 왜 이런 상자를 주셨나요~... 하고 말야.
 
가은:원망해서는 상자가 열리지 않잖아요~ 음, 그렇죠. 질문이 애매하기는 했어요.
그럼.. 예빈언니. 지금 갖고 싶은거 있나요? 물질적인게 아니더라도... 그래요. 마법소녀가 되려고 했을 때 바랐던 것 처럼.. 뭐든.
 
예빈:응. 그러니 포기하는 것에 가까울까... (희미하게 미소짓고는) 너도 알잖니, 우리들은 인간이 이룰 수 없는 소원을 바랐기에 그만큼 절망하게 된 것을.
...뭐든? 꼭 물질적인 것이 아니어도 된다면야~ (끙) ......당장 생각나는 건 역시, 마법소녀가 되기 이전으로 돌아가는 걸까? 막상 돌아가면 다시금 바보같은 소원을 빌지도 모르겠지만.
 
가은:(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판도라의 상자 안에, 마법 소녀가 되기 전의 세계가 있다고 해요. 지금의 염원처럼~ 마법소녀가 되지 않고도 살 수 있었고, 큐베를 만날 일도 없고. ..바보같은 소원을 빌 게 될지도 모르지만 마법소녀같은게 되지 않을 수도 있던 세계..
그렇게 될 수 있는 세계나 방법이 상자 안에 있다면, 그리고.. 그 열쇠도 상자 안에 있다면
.....그래도 언니는 그 상자를.. (질문을 끝맺지 않고 어떤 답이 올까 응시하기만 한다.)
 
예빈:......어째서 그런 가정을 하는거야? (계속해서 이어진 묘한 질문에 표정이 굳는다. 단순한 호기심이라 치부하기엔 구체적이고, 마치...) 그 상자 안에 든 세계가 희망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니라고 봐. 가은아... 나는 신의 자비를 믿지 않아. 그러니 시험에 들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가은:..맞아요. 시험에 들지 않는 것이 최선일지도 몰라요. 신에게 비웃음을 살 일도 생기지 않고.. .. (예빈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가 긍정한다.)
그래도 사람이라면 어떤 순간에는 신의 자비를.. 바라게 되잖아요. 우리도 그래서 소원을 빌었던게 아닐까.. 생각해요. 다 지난 이야기지만. (가볍게 웃고는 문에 기대선다.) 이만..나갈까요? 여기는 먼지가 너무 많네요. 책이 많아서- 자주 쓰는데도 그러네요.
 
예빈:...그리고 그만큼의 인과를 얻었지. 그래, 다 지난 이야기야. 어쩌겠니. 이런 걸 생각해도. (괜시리 제 머리카락 끝을 만지작대며 중얼이고 네 쪽을 바라본다) ...응 나가자.
(근데 다른 책장은 보지 않는건가... 약간 아쉬운 농담곰 표정됨)
 
가은:(아쉬운 농담곰 ㅠㅠ )
(문을 열고는 예빈이 나오길 기다린다.) 지난 이야기에 발이 묶여있고자 한 적은 없는데, 언니를 보니까 괜히 생각이 났나봐요.
(나중에 와볼 수 있으니까 걱정말라는 우쭐 농담곰 )
 
예빈:(우쭐 농담곰... 귀엽다)
괜히~? 그런 것 치곤 굉장히 철학적인 질문이었는데. 가은이 네 생각은 알다가도 모르겠어. (농담하듯 말을 흘리고 서재를 나온다.)
 
가은:..아, 그랬나요? 하하.. 혼자 지내다보면 생각이 많아지고는 하잖아요. 또.. 마침 읽고 있던 책이 판도라의 상자와 관련되었으니까. ... (서재를 빠져나와서는 조금 고민한다.) 올라가볼까요?
 
예빈:... (부디 가은이가 이상한 쪽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할텐데. 고민하는 모습에 뒤늦게 살짝 끄덕인다) 응 가은이 너도 2층 방에서 지내?
 
가은:아-뇨? 저는 3층 방에서 지내요. ..아, 3층은 조금 정리가 안되어 있어서.. 올라오지 말아주세요. (민망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다가) 2층이랑 3층 사이에 피아노가 하나 있거든요.
저는 피아노를..잘 치지는 못하지만 .. 연습중이기도 하고, 언니는 좋아할까 싶어서.
 
예빈:음 아파서 정리하지 못하는 거라면, 내가 도와줘도 괜찮은데~... (사실 간호하러 온 이유도 있다.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피아노? 좋아해! 나 성악 전공이잖아. 그보다 가은이 네가 피아노를 치는 줄은 몰랐네. 최근 연습하는 거야?
 
가은:(괜찮다는 듯 웃고는 계단을 오른다) 최근 연습하는게~ 맞아요. 악보를 겨우 보면서 연습하는거라, 엄청 못치는 것 같기는 한데, 제가 듣는 거랑 누가 듣고 말해주는건 또 다르니까요. 듣고 어떤지 말해줬으면 싶어서.
 
예빈:그런 거라면야~ 난 기대되는데. 곡은 뭐야? (혹시 젓가락 행진곡...? 생각하며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함께 계단을 오릅니다. 이 휴양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2층 복도. 당신이 머무는 방 외에, 두 개의 방이 더 자리해 있습니다.
 
가은:음.. 젓가락 행진곡은 아니에요. 제목을 분명 읽었었는데, 영어라.. 기억이 잘 안나네요. 들어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몰라요.
 
예빈:(영어... 그럴 수 있지 응응)
 
가은:... (2층 복도를 보다가 문득 돌아보고는) ..아, 그러고보니 화장실이.. 어디인지도 말을 안했네요. 저기가 욕실이고.. 저긴 다른 손님용 방이에요.
이쪽은 청소를 덜해서... (적당히 이야기하고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예빈:...~생각해보니, 나 일어나서 씻지도 않았네. (민망) 이따가 쓸게. (소개해주지 않는 걸까? 얌전히 집주인을 따라간다.)
 
가은:아, 전혀 몰랐어요.. (자다 일어난 모습도 완벽한 예빈..)
...(가벼운 농담을 하다가 ) 아.. ..비가 오네요.
 
예빈:(그럴리가... 꼬질)
...비? (그말에 창밖을 바라본다.)
 
가은의 말에 문득 창가를 보면, 그의 말대로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오후 다섯 시. 먹구름 때문인지 바깥이 어둑해져오고 있습니다.
 
예빈:역시 내리는구나... 여기, 비 자주 오는 편이야?
 
가은:(고개를 젓는다.) 그렇게 자주 내리지도, 또 안 내리지도 않아요. 바람은.. 심한 편이에요. 이 뒤가 해안선이라 그런지.. ...
그래도 비가.. 새거나 하지는 않아요. (낡은 집이니 예빈이 걱정할까 덧붙인다.)
 
예빈:새면 큰일이지... (다행이다 대야 여기저기 갖다둘 뻔) ...뭐, 운치는 있네. 당분간 비 그칠 때까지만 나가지 않으면 될 테니까.
 
비가 거세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폭풍우가 될 것 같네요.
 
함께 계단을 오릅니다. 이 층과 삼 층을 잇는 계단 옆.
 
창문 아래의 애매한 공간에 그랜드 피아노가 하나 놓여있습니다.
 
예빈:(운치있게 내리는 게 아니라 하늘에 구멍뚫린 수준의 비네...)
...피아노가 이런 곳에? (신기한지 눈 깜빡)
 
가은:...신기하죠? 저도.. 처음에 보고, 꼭 피아노를 위해 만들어둔 공간인 줄 알았어요.
(피아노 가까이에 가서는 띵. 건반을 하나 누른다.) 낡은 소리가.. 나는 것 같기는 하지만, 듣기 싫지는 않죠? 사실- 잘 모르기는 해요. 언니가 듣기에 어떨지 모르겠어요.
 
예빈:(지진이라도 나면 위험하지 않나? 잠깐 생각 지우고) 음... 다시 들어볼게. (집중..)
 
가은:아, 그럼 이번에는 제대로..
 
그가 당신을 피아노 앞으로 이끕니다. 창틀이 불안하게 흔들립니다.
 
절벽 위의 집.
 
아무도 찾아올리 만무한 곳에서의 고립
 
큰 바람이 한 번 불고,
 
열려 있던 창 너머로 가은이 얹어둔 악보 몇 장이 날아간 일은 순식간이었습니다.
 
하얀 새 여러 마리가 새장 밖으로 날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동시에 가은이 계단에서 뛰어내리듯 달려 나갑니다.
 
쿵쿵쿵쿵. 거친 발걸음 소리가 고요한 저택을 뒤흔들고,
 
제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망설임 없이 현관문을 열고 달려나갑니다.
 
예빈:가, 가은아?!! (놀라선 붙잡기 위해 뒤따라 달려나간다.)
 
가은을 부르며 예빈도 뒤따라 내려갑니다.
 
들려오는 대답은 없습니다. 열린 현관문 너머로, 비가 들어옵니다.
 
가은은 이미 저 너머, 갈대밭 사이를 질주합니다.
 
예빈:가은아...! 잠깐! 멈춰...... (아픈 아이가 왜, 왜 이렇게 빠른거야?! 최대한 열심히 뛰어간다..)
 
폭풍우 아래의 두 사람, 우리를 가로막는 갈대밭. 그 너머에는..
 
휘몰아치는 비에 시야가 먹먹해집니다. 소리를 쳐도 그는 멈추지 않습니다.
 
저 너머, 해안선을 앞둔 절벽 끝에 다다라서는, 그는 무릎을 꿇고 주저 앉습니다.
 
비의 소리가 머리카락을 흠뻑 적시고,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은 눈물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빈:(이렇게 달려본 적이 얼마만인지,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헉, 가은, 이 너... 대체 왜... 제정신이니?!! 이런 날씨에 밖에...!
 
가은:...예빈언니.
 
병든 사람의 파리한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그의 등이 이렇게 작았던가요?
 
가은:(제정신이냐는 물음에는 대꾸하지 못하고 절벽 너머만을 본다. 절벽 너머. 그 너머에는...) ..언니. 바다가.. ...바다까지 악보가 날아가버렸어요.
 
예빈:...빨리 들어가자. 추워. (그 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손을 내민다) 가은아, 날아간 악보는 어쩔 수 없어. 이쪽으로 와.
 
가은:...(내밀어진 손을 차마 보지 못한다.) ... 어쩔 수 없지만.. 제가 조금 더 빨랐다면,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저 너머가 바다가 아니었다면..
....왜 노력의 끝에는 절망만이 남는걸까요. 이런걸 바란 적은 한 번도
단 한 번도 없어.. 언니,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그냥. 그냥.. 어쩌면 행복을 바랐을지도 몰라요.
 
예빈:가은아. (그대로 천천히 한 걸음씩 네게 다가가며) 그냥... 일단 돌아가자. 응? 비나, 바다나, 날아간 악보에 대해서는... 가서 이야기 해. 그러면 되잖아.
...어떤 절망은 곧바로 회복할 수 있어. 그렇게 하나하나의 행복을 쫓으며, 우린 살아가게 되는 거니까. 가은아. 언니 손 잡아.
 
가은:...(고개를 돌려 예빈을 본다) ...회복할 수 있는 절망. 꼭.. 신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만큼의 고통만 준다는 말 같아요. 이것도 시험?
 
절벽 너머, 아름다운 해안선이 펼쳐져 있습니다.
 
폭풍우 치는 바다. 무언가 떨어지면... 그 누구도 찾지 못하게 되겠지요.
 
바다와 폭풍우, 그리고 절벽 위의 집.
 
이곳에 멈춰 있는 두 사람.
 
예빈:아냐, 가은아. 가은아..! (그에게 있어 악보가 어떤 의미였길래 이토록 절망하는 걸까. 머릿속을 채우는 최악의 가정에 문득 떨리는 목소리로)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잖아. ...시험이라면 이겨내. 여기서 무너질 생각이니? 너 그런 모습을 보이려고 날 부른거야?
 
가은:...원망하겠다더니, 이겨내라고 해주는거예요? (이런 모습을 보이려고 부른 것은 아니다. 그를 부른 이유는...) 언니. 언니는 제 편지를 받고... 무슨 생각으로 여길 온거예요. 차라리....
..... 아니에요.
그래요. 돌아가요. ..
일단 들어가요..
 
예빈:그건... (말문이 막혀 그 자리에 멈춰 선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손을 뻗어 네 팔을 붙잡아 자신 쪽으로 끌어당긴다) 가은이 네가... 걱정되어서 왔지.
...마법소녀가 서로를 의지하지 못한다면, 그 누가 우리의 아픔을 알아주겠니.
응. 일단은.. (혹시 뿌리칠까 꼭 붙들고 집으로 향했다.)
 
비에 젖어 찢어진 악보들.
 
그 쓸모를 잃었습니다.
 
살아있지만 죽음이 예정 된 목숨처럼.
 
...
 
그가 벌벌 떠는 것이 심상치 않습니다. 열이 끓는 모양이에요.
 
장대비 속을 뛰어다녔으니, 당연한 것이겠지요.
 
집 안으로 들어서면, 해가 집니다. 저택은 금세 어둑해집니다.
 
가은:...걱정. ..고마워요. ..방으로 가야겠어요. (잔기침을 하고는 계단 앞에 선다.)
 
예빈:괜찮아? 내가 곁에 있는 편이... (우산도 없이 이 날씨에 밖을 돌아다녔으니... 영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가은:..괜찮아요. 언니도. ..일찍 쉬어요. (계단을 하나 오른다.) 쫓아오게 만들어서.. 미안했어요.
 
예빈:(안 괜찮아 보여......) ...알겠어. 그래도 무리하지 말고 힘들면 언니 방으로 와. 불러도 좋고.
 
가은:(고개를 끄덕이고는 입꼬리를 당긴다.) ... 비가 얼른, 그쳤으면 좋겠네요.
고마워요. 아깐.. ..조금 충동적이었어요. 원래 이러지 않는데. ...음, 쉬어요. 저도.. 얼른.. ..가볼게요.
 
예빈:......응. 꼭 따뜻한 물로 목욕하고, 해열제 있으면 먹어둬. (불안불안한데... 쉬러 돌아간다. 젖은 몸도 씻고..)
 
예빈도 일찍 쉬는게 좋겠어요.
 
여전히 빗소리가 따라붙는 것 같습니다.
 
예빈:(욕실에서 씻고 노곤노곤해진 몸으로 방으로 총총...)
 
어둑한 방. 음울한 저택의 공기.
 
파도 소리가 방 안 가득 들려오는 기분입니다.
 
오늘은 일찍 잠에 드는 게 좋겠어요. 환자가 둘이 되어서는 안되죠.
 
예빈:(흑 오늘도 바로 눕는다. 잠만보..)
 
눈을 감습니다. 아직까지도 빗소리가 웅웅거리는 것만 같습니다.
 
의사를 부르기도 어려운 날씨입니다.
 
그렇다 해도 얼마나 더 지속할 수 있을까요.
 
세 번째 날
 
아침. 오늘은 음악 소리가 들려오지 않습니다.
 
홀로 내려가보아도, 가은의 모습은 보이지 않네요.
 
아마도 지난 날의 열병으로 앓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예빈:가은이는... (모습을 찾다가 위층으로 올라간다) 많이 아픈걸까, 역시..
 
3층에는 올라오지 말라고는 했지만, 아플 것이 분명한데 모른척 할 수는 없겠죠.
 
3층으로 올라가면, 2층과 같이 문 세 개가 있습니다.
 
예빈:(첫번째 문을 노크하고, 열어본다) ...가은아?
 
문을 열면, 당신이 머무는 방과 다를 것이 없는 방이 보입니다.
 
캐노피 침대. 가은이 누워있습니다.
 
가은:...언니?
 
예빈:몸은 좀.. 괜찮아? 열은... (다가가서 가은이의 상태를 살핀다.)
 
가은:...좋다고 말하긴.. 어렵네요. (잔기침을 한다.) ..미안. 조금 쉬면 괜찮을 것 같아. (이불을 끌어당긴다) 가까이 오면 옮을지도 몰라요.
부엌에 가면 먹을 것들이 좀..있으니까. 아침....챙겨요. 저는 조금만 더 잘게요. ..
 
예빈:그런 소리 할거니? 아플 때야말로 주변에 의지해야지. (이불에 숨은 가은이를 가만 보다가, 짧게 한숨을 쉬고) 그럼 가은이 네가 먹을 식사도 가져올게. 조금 쉬고 있어.
(방을 나와서 부엌으로 가봅니다...)
 
거실과 구분 없이 이어진 주방입니다.
 
높은 테이블과 개수대, 냉장고, 찬장 등 기본적인 구성이 들어차 있습니다.
 
예빈:음... 먹을만한 게 있을까~ (일단 냉장고를 벌컥)
 
식재료들이 적당히 진열되어 있습니다. 야채나 과일도 종류가 꽤 되네요.
 
아픈 사람이 먹기에는 자극적이지 않나 싶은 인스턴트 제품들도 여럿 들어있습니다.
 
예빈:인스턴트가 많아... (아련) 죽은... 못 끓일 것 같고, 야채 수프를 만드는 게 좋겠지. (재료들을 꺼내고 인스턴트도 자신이 먹을 용으로 꺼낸다.)
 
예빈은 재료들과 인스턴트 제품 하나를 꺼냅니다.
 
밖은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네요.
 
예빈:비는 언제 그칠까.. (별 생각없이 인스턴트... 라면을 끓이고 야채 수프도 만든다. 맛은 98점!)
...... (엄청 맛있는데?)
 
최고의 수프야
 
예빈:(뿌듯... 수프를 그릇에 예쁘게 담고 뚜껑을 덮어둔다.)
...나 요리에 재능이 있을지도. (라면도 호로록 다 먹고나선 수프 그릇을 들고 다시 가은이 방으로 타박타박)
 
타박타박 1층에서 3층까지 그릇을 들고 올라가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 분명하지만
 
졀벽 위. 고립되어 혼자가 된 것 처럼 보이던 이를 위해 수프 한 그릇을 내어 주는 것은 큰 위로가 될테니까요.
 
예빈은 가은의 문 앞에 섭니다.
 
예빈:가은... (습관처럼 이름을 부르고 노크하려다가 자고 있나 생각이 들어 살며시 문을 연다.)
 
가은은 몸을 웅크리고 누워있습니다. 잠을 청하려는 듯 고른 숨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예빈:... (조용한 걸음으로 다가가 침대와 가까운 협탁 위에 수프 그릇과 식기를 내려놓는다.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가은아. 수프 끓여봤어. 졸리면 자고... 나중에 일어나서 먹어, 알았지?
 
돌아오는 대답은 없네요.
 
예빈:음...... (피곤한가 봐, 괜히 건드리지 말자 생각하고 다시 살금 방을 나선다.)
 
예빈은 방을 나섭니다.
 
예빈:이제 그럼~.. (슬쩍 옆방을 본다. 구경해도 되려나... 조심스레 문을 열어봐요.)
 
문을 열어보면, 비좁은 공간이 나옵니다.
 
물을 먹은 먼지 냄새가 납니다. 정리가 되어있지 않다더니, 바닥에는 청소 용품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습니다. 구석에는 벽장 하나가 서 있습니다.
 
예빈:...좁네. (흩어진 청소 용품들을 주워서 싹 깔끔하게 정돈해둔다. 그러다 벽장을 발견하고 열어보기로-)
 
벽장을 열어보면,
 
반응을 준비할 틈도 없이 예빈에게로 와르르, 무언가 쏟아집니다.
 
예빈:와아악, (뭔가 쏟아져서 휘청)
...... 뭐, 뭐지~~? (뒤늦게 확인해 봅니다.)
 
쏟아진 물건을 확인해보면... 백골?
 
누군가의 뼈로 보입니다.
 
이성 손실 1/1d3
 
예빈:진짜... 야? 이거..
SAN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2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흠 가짜일수도...)
 
할로윈을 대비한 가짜 백골일지도 모르겠어요.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물건임이 틀림없습니다.
 
예빈:...기분 나쁘네. 아무리 그래도 이런게 저택에.. (최대한 맨손이 안 닿는 형태로 들어 벽장 구석으로 치운다.)
깜짝 놀랐어... 정말. (주변을 둘러보고 대강 정리가 된 것 같으니 방을 나선다.)
 
전보다 깨끗해진 창고를 뒤로하고 예빈은 방을 나섭니다.
 
예빈:(3층의 마지막 방을 열어보기로. 총총..)
 
문을 열어보면, 삼층 역시 세면대나 욕조 따위가 있는 평범한 욕실입니다.
 
예빈:욕실이었구나. 하긴... (끄덕이고 층을 내려와 2층의 다른 방을 확인하러 갑니다.)
 
지금은 텅 빈 방입니다.
 
예빈이 머무르는 손님 방과 완전히 똑같은 구조입니다만, 옷장과 책상에는 몇 가지 물건들이 놓여 있습니다.
 
예빈:......? (옷장의 물건을 본다.)
 
가은:옷장에는 십년전 유행했던 여성복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예빈:(그렇구나, 가은아.)
 
옷 장에는 십년 전 유행했던 여성복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십 년 정도 쓰지 않은 상태로.. 먼지가 폴폴 날리네요.
 
관찰력 판정이 가능합니다.
 
예빈:거의 10년 전 유행인데, 이런 옷들은... (어쩐지 유행에 박식)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옷 한 벌에 피가 잔뜩 튀어 있음을 깨닫습니다.
 
예빈의 손에 붉은 액체가 가득 묻어납니다.
 
마룻바닥도, 천장도, 비스듬히 열린 창틈 너머 하늘도
 
전부 붉습니다.
 
나는 그날 생각했습니다.
 
가문의 사람들이 저주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고.
 
우리는 차라리 저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게 낫다고.
 
그래서 우리는 상자 속에 빠졌으며 아름다운 희망의 조각을 끌어안은 채, 영영 나오는 일이 없게 되었어요.
 
...
 
피처럼 보이는 액체는 이미 검게 굳은 지 오래입니다.
 
백일몽이었나?
 
이성 손실 0/1
 
예빈:
SAN Roll
기준치: 59/29/11
굴림: 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마녀의 결계와 다름없네. 이 장소가 내게 환각을 보여주고 있어.
차라리 저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게 낫다...고. (차분히 읊조리고 옷장을 닫아 책상 위를 바라본다.)
 
책상 위는 깨끗합니다.
 
다만, 손을 대면 미묘하게 덜컹거립니다. 무언가 걸려있는걸까요?
 
예빈:뭔가 걸린 걸까...? (책상 다리 부근을 확인해본다.)
 
책상 다리를 확인해보면, 뒤에 처박힌 종이 뭉치 하나가 보입니다.
 
예빈:...... ! 이것 때문이구나. (종이 뭉치를 꺼내봅니다.)
 
역시 종이 뭉치가 원인이었던건지, 책상의 덜컹거림 또한 없어집니다.
 
종이뭉치는 굉장한 악필로 쓰여 알아보기 힘든 몇 줄의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바보같은 놈들. 막내딸의 생일이라고 파티를 연 적 한 번도 없었으면서 갑자기 모이겠다고.
 
뭐든 원하는 걸 말해보라고? 내가 갖고 있다고 눈치챈 모양이지.
 
아무도, 아무도 상자를 갖지 못하도록 만들겠어. 그건 내 거야.
 
그건 내 거야. 그건 내 거야. 그건 내 거야.
 
그건 내 거야.
 
그건 내 거야.
 
,,,,,
 
그 사람도 불렀다. 가족들로 모자라면...
 
이전에 본 생일 카드에 쓰인 것과 같은 필체로 보이네요.
 
예빈:...또 다시 상자. (종이에 적힌 내용을 빤히 보더니) 퓌라... 그가 가족들과 어떤 사람을 죽인걸까? 그래보았자 10년 전의 일인데, 지금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는 걸 보면 아예 무시하긴 어렵네. (곰곰)
더 알아봐야겠어. (종이를 들고 방을 나선다. 1층 서재로 샤샤샥...)
 
희미한 불빛들.
 
책장에 덧칠된 녹색 페인트는 벗겨져 나뭇결을 드러내고, 여전히 먼지가 잔뜩 앉아있는 서재입니다.
 
예빈:이런 곳에서 지내면 몸이 더 안 좋아질텐데~... (콜록, 작게 기침을 하고 두번째 책장을 보러간다.)
 
자료조사 판정
 
예빈: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76
판정결과: 실패
(아아아아악)
 
책 몇 권이 빠져나가 있는지 공간이 텅 비어있습니다.
 
예빈:... (다 다시 한번은 안되나요)
 
좋아요 해봅시당
 
예빈:(휴... 잘하자)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2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두번째 책장. 한 켠이 텅 비어있습니다.
 
책 몇 권을 읽어보면, 이것은 이 저택에 살던 가문에 대한 기록인 것 같습니다.
 
이 집을 향유하던 가문은 십 년 전 오늘. 5월 15일.
 
가문의 막내딸이었던 퓌라의 생일날에 멸망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상자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영영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가장 마지막 책에만 저자, 데우칼리온이라는 표기가 되어 있습니다.
 
책의 간지. 메모된 몇 줄의 절박한 문장들을 읽습니다.
 
예빈:...데우칼리온. 살아있었구나. (맥락상 그도 가족들과 함께 죽을 걸로 추측했었다. 그러나 뒤이은 메모를 읽고 심각한 표정이 되어) 3층 욕실.. 확인해 봐야겠어.
...... (찜찜한 내용의 책은 덮고 세번째 책장을 뒤져본다.)
 
자료조사 판정
 
예빈: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37
판정결과: 보통 성공
(휴...)
 
세번째 책장. 검은 책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습니다.
 
괴기스러운 검은 책들 사이에서 이미 익숙한 표지의 책 한 권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당신이 머무르는 손님용 방에 놓여 있던 양장본. 그 양장본의 상편입니다.
 
예빈:아. 그 책의 상편이 여기에... (당장 내용을 읽어본다!)
 
저주받은 상자...p.134 수록.
 
예빈:......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무의식 중에 인상을 찌푸리고 책을 덮는다.)
...아냐, 괜한 생각은 그만두자. (고개를 젓고 마지막 책장을 확인한다.)
 
네번째 책장을 살핍니다. 자료조사 판정.
 
예빈: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56
판정결과: 실패
... (6 깎...깎을까요 행운)
 
네미 (GM):깎..고싶으면 그러셔도 되는데 굳이...
 
예빈:...... (아님 재판정을)(그치만...)
 
^ㅡ^
 
네 번째 책장에 진열된 책들은,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노트입니다.
 
저자의 이름은 모두 몽상가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예빈:몽상가...? (수상한 노트..)
 
꼭 자연과학의 법칙에 속박되지 않는 꿈의 세상, 알기 어려운 과학. 처음 보는 지식에 공포소설 같기도, 허구의 이야기같기도 합니다.
 
알아듣기 어려운 이야기에 노트를 덮고자 하면..
 
행운 판정
 
예빈:
행운
기준치: 60/30/12
굴림: 39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 사이에서 쪽지가 한 장 툭 떨어집니다.
 
예빈:...앗, (떨어진 쪽지를 주워 읽어본다.)
어떠한 시대에도, 공간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영역에도...? 일반적인 시간과 공간 마법보다 더 대단한 것 같은데. 그럼... (열쇠.. 첫번째 책장에서 열쇠 모양 책갈피를 찾는다!)
 
예빈은 판도라의 상자 페이지를 표시해둔 책갈피를 찾습니다.
 
예빈:(일단 이 책갈피가 열쇠일지 모르니 소중히 챙긴다...)
 
열쇠를 가리키는 쪽지를 본 후라 그럴까요. 책갈피가 더 소중히 여겨집니다.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밖이 더 어둑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판도라 언박싱
예빈:어둡네~... (노트를 도로 꽂으며 네 번째 책장을 다시 본다!)
자료조사
기준치:50/25/10
굴림:16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곧, 이 저택은 완전히 어둠에 삼켜지겠지요. 네번째 책장을 다시 살펴봅니다.
이 노트는 하나의 기록같습니다.
그가 당도했다고 일컫는 지역은 이 세계의 것이 아니며, 섬세한 펜터치로 그려진 식물과 동물은 가만히 보고 있기에 너무나 흉측합니다.
자연과학의 법칙에 속박되지 않는 꿈의 세상, 명왕성으로부터 내려온 이계의 과학자들.
어쩌면 마법소녀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예빈은 알고 있죠. 이런 지식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고통이라는 것을요.
그는 광인이었나요? 혹은 ...
...이런 어둠을 마음에 품고 있었으면서 왜 당신에게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던걸까요.
기록은 2년 전, 가은이 실종되었던 날짜에서 뚝 끊어져있습니다.
예빈:이런 건 그 끔찍한 마녀의 결계로도 설명되지 않아. ...가은이 넌 무엇을 목격한거니? (심란한 마음으로 노트를 덮는다.)
그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겪었던걸까요.
남겨진 기록만으로는 설명이 되질 않습니다.
예빈:뭐든 직접 듣는 게 낫겠지만... (슬 서재를 나서서 2층 계단을 올라가다, 중간에 위치한 피아노를 본다.)
어제 악보가 날아가서 결국, 연주를 듣지 못했죠. 피아노는 50년 전 모델이지만 관리가 잘 된 듯 좋은 상태입니다.
피아노 의자를 열어볼 수 있어요.
예빈:...소리가 좋네~ (피아노 건반 두 어개를 눌러 소리를 내보더니 피아노 의자를 슬쩍 열어본다.)
딩. 빗소리에 섞여 맑은 건반 소리가 울립니다.
의자 속에는 악보집 대신...
엽총이나 헌팅 나이프 등의 무기가 가득 차 있습니다.
모두 검은 액체가 말라붙어 있어 으스스합니다. 피겠지요.
무기 구매 영수증처럼 보이는 종이도 함께 들어 있는데, 결제일이 10년 전의 5월 14일입니다.
예빈:...아마 퓌라가 쓴 무기겠지. 그런 걸 이런 곳에 넣어두다니..~? (그 아이도 참 정상은 아니구나, 중얼거리며 의자 뚜껑을 닫는다.)
(그리고 가은이의 방으로 올라간다) ...수프는 먹었으려나?
예빈은 의자 아래 숨겨졌던 10년 전의 흔적을 다시 덮어둡니다.
계단을 오릅니다. 세 개의 문. 가은은 누워있습니다.
예빈:가은아? (다가가서 상태를 확인하고, 수프 그릇도 힐끔..)
수프는 조금 남았고, 가은이는 잠들어있습니다.
예빈:그래도 잘 먹었네.. 다행이다. (남은 수프 그릇을 들고 방을 나섭니다. 치워놔야지~)
예빈은 수프 그릇을 들고 방을 나섭니다. 치워두는게 좋을테니까요.
예빈:(샤샤샥... 부엌에서 설거지도 짠 해놓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예빈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갑니다.
끔찍한 적막. 고독하고 불온한 저택.
어둠에 먹혀들어가는 것만 같습니다. 이만 잠에 드는게 좋겠어요.
예빈:...이런 저택에 계속 있는 게 좋은 일일까... (고민하며 몇번 뒤척이다 어느새 스르륵 잠든다.)
이런 저택에 계속 있는 게 좋은 일일까요.
하루 빨리 떠나는 것이 좋을지도 모릅니다.
몇 번 뒤척이다 예빈은 잠에 빠져듭니다.
...
꿈은 마치 영화처럼 진행됩니다.
조촐하게 꾸며진 생일 파티. 어머니와 아버지와 오빠.
당신은 이 집의 막내딸입니다.
지금쯤 결혼 상대는 손님 방에서 수면제를 먹고 고꾸라져 있을 겁니다.
케이크 위의 촛불을 후 불어 끄는 순간에 당신이 마련해두었던 사냥꾼들이 저격을 시작합니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 비명, 테이블 위의 아름답게 차려둔 음식이 쓰러져 이리저리 튀는 소리.
모든 것이 붉고 선명합니다.
이런 살육 속에서도 , 오히려 그렇기에 당신은 현실감. 지독한 현실감을 느낍니다.
차분합니다.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당신은 상자를 꺼냅니다.
상자 위로 그 빨간 것들을 흩뿌립니다.
상자가 열릴 때까지 계속, 계속, 계속.....
상자는 열리지 않습니다.
무너지는 듯한, 긁어내리는 듯한 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일어났을 때는 온몸이 식은땀에 흠뻑 젖어있었습니다.
햇빛이 당신의 겁에 질린 표정을 상냥하게 어루만집니다.
이름 모를 새가 울고 있습니다.
비의 향기가 여전히 코를 찌르지만, 고개를 들어 창가를 보면
전부 지난 일이라는 듯, 맑게 갠 날씨입니다.
예빈:... .... .. (이상한 꿈. 차차 악몽에서 벗어나 현실감이 들기 시작하니, 느리게 숨을 내쉬고 젖은 땀을 훔친다. 이어진 시선은 창가로 향해 비가 갠 하늘을 오래도록 응시했다.) 내가 퓌라였어, 내가...
...가, 가은이는.. (일어나 3층 방으로 다시 가본다...)
예빈은 3층, 가은의 방으로 향합니다.
문을 열어보나요?
예빈:... ...? (끄덕..)
살짝 문을 열어보면...
창문으로부터 들어오는 햇살이, 그의 방을 밝게 비추고 있습니다.
그는 곤히 잠들어 있습니다. 머리 맡에는 노트 한 권이 놓여 잇네요.
서재의 기록들과는 다른 노트. 밤새 열병이 지나간 흔적이 남은 그의 얼굴을 봅니다.
자그마한 숨소리가 들려옵니다.
예빈:... (구태여 그를 깨우지 않고, 노트를 조심스럽게 펼쳐본다.)
곤히 잠들어있는 그를 굳이 깨울 이유는 없겠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알기 위해서.
예빈은 매 순간 선택을 합니다. 노트를 펼쳐보면...
상자를 열고 싶었다.
나로는 열리지 않았다.
예빈.. 언니가 필요했다.
병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했다. 언니를 불렀지만.. 어쩐지 망설여진다.
사람이 죽는 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봐 왔지만, 사람을 죽이는 건...
혹은 ■■를 죽이는 건...
구름이 지나면, 더 밝고 넓은 햇살이 그를 비춥니다.
온기를 느꼈는지, 그가 천천히 눈을 뜹니다.
예빈:... (일기에서 시선을 떼고 널 바라보며) 아, 일어났어?
가은:(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본다. 노트를 보는걸 개의치 않는 듯 상체를 일으켜 앉는다.) 네. ...아, 비가.. 그쳤네요.
예빈:응. 비가 그쳤으니 이젠~... 쌀을 사러 나갈수도 있겠네. 기분은 어떠니?
가은:...열은 내려서. ..괜찮은 것 같아요. ... (할 말을 고르다 옅은 웃음을 터뜨린다.) ...할 이야가는 그게 전부예요?
예빈:다행이다~ 열이 내려서.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짓고 답하더니) ......왜, 그럼 내가 널 원망하기라도 할까봐? 옛날의 나라면... 그랬을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궁금한 건 있어. 네가 무엇을 바라고 상자를 열고 싶었던 건지 말야.
가은:...원망해줬으면.. 했을지도 몰라요. 음.. 상자 안에 자신이 바라는게 있다면... 저는 제가 있던 곳이 들어있을거라 생각해요. 이 곳이 아닌.. ..원래 있던. 제 시간의...
...닿아서. 기뻤을지도 몰라요. 종말을 피해갔잖아요. 우리.. ... 그런데, 갑자기 다시 여기. ... (문득 창 밖을 쳐다본다.) 지옥이 있다면 어디일까요. 어디서든 행복하게. 다른 생각은 하고싶지 않았는데. ...
우리는 너무 많은 일을 겪었어요. 그렇죠.
예빈:...그렇네. 넌 이 시간선의 인간이 아니었지. (시간을 되돌리고 끝내 바라던 평화를 얻어냈음에도, 돌아갈 수 없었던 종말의 세계선을 붙드는 건 어떤 기분일까. 창가를 응시하는 네 시선을 따라가며) ...네가 바란 결과 아니었니? 아니면, 다시 세상에 종말이 일어난다는 뜻일까?
네 말대로... 가은아. 어디서든 행복한 걸로 괜찮지 않아? ..어째서 이곳이 네 장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어.
가은:제가 바란 결과는 어느쪽이든.. 종말을 막는거였죠. 타의 행복에, 저도 행복을 느꼈으니까. ...(예빈을 본다.) ...어떨 것 같나요? 그 시간선은.. ..하나 말해드릴 수 있는건.. 저는 그 곳에서 필요한 존재라는거겠죠. ... 이곳은...
...
저택을 휘감은 덩굴에는 본래 장미가 가득 피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어느 날을 기점으로 타오르는 것처럼 모두 져서, 재처럼 흐트러지고 말았을 때는 문득 소름이 끼쳤습니다.
죽는 날은 맑았으면 한다고 중얼거리는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그 아래에서 물건 하나를 꺼냅니다.
당신은 저주인지 행복인지 알기 어려운, 두 시간선에 걸친 자의 운명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을 할 수도 있겠죠.
혹은 그를 믿거나.
예빈, 신뢰 판정입니다.
예빈:
신뢰 Roll
기준치:65/32/13
굴림:58
판정결과:보통 성공
이윽고 지옥으로 내려갈 때
그곳에서 기다리는 부모나
친구에게 난 무엇을 가지고 갈까.
아마도 나는 주머니에서
파리해진, 찢겨진
나비의 시체를 꺼낼 것이다.
그리고는 건네면서 말할 것이다.
일생을
아이처럼, 쓸쓸하게
이걸 쫒고 있었습니다. 라고.
│사이조 야소, 나비.
그것은 작고 초라한 상자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매우 잘 아는 물건입니다.
언젠가는 누군가의 도움이 되기 위해, 남겨두었던 하나의 글리프시드.
오염이 진행되었던 어느날의 소울젬이 떠오릅니다.
가은:(가만히 상자 안을 내려다보다, 이내 고개를 든다.) 이곳도 물론.. ..행복하죠. 하지만.. 혼란스러웠던걸지도 몰라요.
예빈:글쎄, 난.. 가은아. 이곳이 아닌 다른 세계를 알지 못해. 그래서 네 혼란을 온전히는.. 이해할 수 없어.
...일생을 바쳐 사명으로 살아가는 마법소녀란, 어떤 걸까? 타인의 행복을 바라며 그 자체에 행복감을 느낀다니... 네가 알다시피, 나는 착한 사람은 아니라서 말야.
그런 내가 느끼기론..... 네 운명은 참 기구해, 추가은. 널 동정할게.
...... (눈동자가 서로 맞닿으니 느리게 깜빡이고) 여전히, 지금도 그 상자를 열 생각이니? 영영 저주받는다고 해도?
가은:이해받기 바라고..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어차피 우리는 타인이고, 같은 운명을 지녔다고 해도 서로를 이해하기는 어려울테니까요. 그저.. 듣고, 공감하고 나아갈 뿐이죠...
그래서.. 하하. 동정한다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어요. 그러기위해 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니...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다른 친구들은.. 제가 다시.. 다른 세상으로 가고싶어한다고 하면 서운해할까봐.. 언니에게 털어놓는거니까...
(마주한 얼굴을 가만히 응시한다. 입꼬리를 살짝 당긴다.) 오래전에. ...다른 세상으로 가는 열쇠를 잃어버렸거든요. 그래서.. 다시 돌아와졌나봐요. 어쩌면 이미 저주를 받았을지도 몰라요.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열쇠를 찾기도 전부터 말이에요.
예빈:서운하겠지. 엄청 말리려고도 할걸? 그 아이들에게 추가은은, 지금 이곳에 있는 너니까 말야. 나도 물론 포함해서.
......그렇다면 차라리 저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게 낫다고. 너도 그렇게 생각한 걸까? 10년 전 이곳에 있었다던 그 아이처럼, 지겨운 희망의 조각을 평생 쫓으며.
(미소는 어느덧 사라진 채) 그래도... 날 죽일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털어놓지도 않았겠지. 결국 내게 무엇을 선택하게 하는 거니? 널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할 희생적인 사람은 아닌 걸 알잖아.
가은:....저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게 낫다는 말은.. ..역시 어울리지 않겠죠. 남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응원하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을테니까요. 저는.. .
(상자를 내려다본다. 열린 상자 안에 든 것은 오래전의 기억. 절벽 위의 집. 아래 고인 물웅덩이..) ... 언니로 상자를 열고, 돌아갈 생각이었어요. 어쩌면 강제적으로라도.. ...
여태까지 그 결심에 흔들림은 없었고, 지금도 그런데.. ..뭘 망설이는지 모르겠네요. 이기적인 희생강요는.. ...그것과 다른게 없어서. .. 그래서 그럴지도 몰라요. (꼭 마녀가 된 기분이라며 농담을 덧붙인다.)
예빈:남들이 기억하는 것과 실제의 네가 다를수도 있지, 뭘 그러니. 상자에 자신의 크기를 맞추면 허무감만 남을 뿐이잖아. (사실 보여지는 것과 내면이 다른 건 네가 아닌 자신이기에. 그래, 이것은 나에게 하는 변명이나 다름없다.)
...그래. 그건 알고 있어. 지금도 변함없는 각오라면 나는 너와 싸워야겠지. 모든 것에 질려버린 나지만, 누군가의 희망을 위해 몸을 던질 생각은 없으니까.
별로.. 네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아. 결국 각자의 소망을 위해 신의 자비를 바랐기에 우리 마법소녀는 존재하는 거니까. 하지만 가은아, 네가 절망하고 싶지 않다면 그 상자를 버리는 게 좋다고 충고할게. ...이건 선배로서 하는 말이야.
버리고... 이 저택도 불태우자. 떠나는 거야. 상자같은 건 절대 꿈꿀수도 없게.
네게 희망을 품지 말라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너도 알잖니? 이 방식은 좋지 않아. 분명.
가은:허무감... ...(예빈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다. 눈을 느리게 끔벅이며 생각을 정리한다.) ...미련인걸까요. 이 상자는.. ...
... 충고 잘 들었어요. 고마워요.. (다시 잠깐 말을 정리한다. 예빈을 보고는) 하지만... 떠난다면, 어디로요? 제가 돌아갈 곳이 아직, 여기에 남아있으리라는 확신은 없어요. 이대로 여기서 지내는 것도..그리 나쁜 선택은 아닐거라 생각해요. ....음, 상자는.. 버리고요.
희망도 절망도 없는 곳이잖아요. 그저, 절벽위에 있을 뿐인.
예빈:난 이곳에 머문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 저택에 불온한 기운이 감돌고 있는 걸 알아. 그러니 네가 계속 여기서 지내는 건, 그저 절벽 끝에서 언젠가 추락하는 것을 기다리는 거나 다름없다고. 그런 생각이 드네.
...뭐,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하잖니. 그러니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으음 일상을 살아가는 거야. 살아내는 거야. 정말 희망도 절망도 없는 삶을.
그건 지루할까? 이미 희망을 맛본 이들에겐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는, 그야말로 저주받은 생일지도 모르지. 그래도 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도.
가은:... 전엔 언니가 그리.. 상냥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조금 다시 보이네요. (베개 아래 숨겨둔 과도는 꺼낼 일이 없어져, 존재조차 잊혀진다. 지루한 삶. 어쩌면 가장 평화로운 일상일 그 시간을 제가 가져도 되는걸까. )
...그래요. 돌아가요.
이건.. 기념으로 가지실래요. 저는, 더 이상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상자 안에 있던 글리프시드를 건넨다.)
예빈:응~... 맞아, 나 그다지 상냥하진 않지? 이미 네게 들켜버린 걸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러니 항상 네겐 지독한 말만 꺼냈던 걸지도 몰라. (문득 베개 쪽에 한번 시선을 주고, 온화한 목소리로)
...가자. 태워줄게. 당장 갈곳이 없다면 한동안은 내 집에 머물러도 괜찮아.
...... (잠시 말이 멈추고, 내민 글리프시드를 받아든다) 별로 기념품같진 않은 선물이지만~.. 그래, 받아둘게. 어쨌든 이건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이니까.
우린 함께 이 불온한 저택을 벗어납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겠죠.
비가 내린 직후인지라, 갈대밭의 비릿한 물냄새는 가시지 않았지만
햇빛은 따스히 두 사람을 비춥니다.
이 곳에 머물러있는 것은, 언젠가의 추락을 기다리는 것
그러니 두 사람은 절벽을 벗어나 나아가기로 합니다.
언젠가, 희망을 바랄 때 이 날을 다시 떠올릴 수 있게 될까요.
우리는 희망도 절망도 없는 곳을 지나
상자 안 가장 아래의 바닥에 희망이 남아있으리라는 기대도 없이
그저 평범하게. 그럴듯 하게 살아가길
저주받은 생이 아니길 바라며, 돌아가기로 합니다.
절벽 위의 집.
저주 받은 상자.
그 무엇에도 미련을 두지 않고.
찾아 헤매던 이상은 존재하지 않았으니 현실 속에서도 꿈으로 도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것을 열어도, 나를 인정하지 않는 곳으로 돌아올 수 밖엔 없었다.
무의식 대신 열어줄 사람이 필요했고 결국
다음에 눈을 뜬다면 당신이 있는 곳이기를 바랐다.
판도라 언박싱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