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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 l 락
디안타 l 마리안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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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여름, 브리스톨 해협에는 기묘한 폭우가 쏟아졌다.
여름. 당신은 얼마 전 집 한 구석에서 어떤 물건을 발견했습니다.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조용히 세월의 더께를 헤아리고 있던 그것은, ‘그녀’의 물건이었습니다. 당신은 물건을 발견하자마자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쌉싸레한 추억 속으로 잠겨듭니다. 그러니까, 어느새 십 년이 지났군요.
한 때 당신은 ‘그녀’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그녀와 당신의 유대를 의심하지 않았고 영원히 함께 할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웨일스 지방의 클레멘스 공작과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린 이후 거짓말처럼 끊긴 소식은 다시 이어지지 않았고 그대로 십 년이 흘렀습니다.
아마도 물리적인 거리가 두 사람 사이를 갈라두었던 탓도 있었을 것입니다. 결혼 후 그녀는 까마득한 남쪽, 브리스톨 해협을 건너야 도착하는 메리어빌 섬으로 떠났거든요. 작은 섬은 공작가의 소유로, 공작가의 컨트리 하우스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거의 무인도에 가까운 곳이라고 합니다.
당신은 그녀가 섬으로 떠난 후 처음에는 몇 번 정도 편지를 보냈으나 답장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걱정도 되었고, 연락 없는 그녀가 야속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자 파도처럼 일렁이던 마음도 바위에 부딪혀 흩어지는 물거품처럼 찬찬히 사라져갔습니다.
아마도, 당신은 집안을 정리하다가 그녀가 아끼던 물건을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영영 그녀를 찾아가볼 용기를 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녀가 그 물건을 진심으로 아꼈다는 사실을 기억한 당신은 지금이라도 그 물건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그것이 핑계였든, 혹은 진지한 사명감이었든간에 당신은 그녀를 찾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십 년 만이네요.
그녀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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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해 여름, 브리스톨 해협에는 기묘한 폭우가 쏟아졌다. 」 여름. 당신은 얼마 전 집 한 구석에서 어떤 물건을 발견했습니다.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조용히 세월의 더께를 헤아리고 있던 그것은, ‘그녀’의 물건이었습니다. 당신은 로자리오를 발견하자마자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쌉싸레한 추억 속으로 잠겨듭니다. 한 때 당신은 ‘그녀’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그녀와 당신의 유대를 의심하지 않았고 영원히 함께 할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웨일스 지방의 클레멘스 공작과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린 이후, 거짓말처럼 끊긴 소식은 다시 이어지지 않았고 그대로 십 년이 흘렀습니다. 아마도 물리적인 거리가 두 사람 사이를 갈라두었던 탓도 있었을 것입니다. 결혼 후 그녀는 까마득한 남쪽, 브리스톨 해협을 건너야 도착하는 메리어빌 섬으로 떠났거든요. 작은 섬은 공작가의 소유로, 공작가의 컨트리 하우스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거의 무인도에 가까운 곳이라고 합니다. 당신은 그녀가 섬으로 떠난 후 처음에는 몇 번 정도 편지를 보냈으나 답장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걱정도 되었고, 연락 없는 그녀가 야속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자 파도처럼 일렁이던 마음도 바위에 부딪혀 흩어지는 물거품처럼 찬찬히 사라져갔습니다. 아마도, 당신은 집안을 정리하다가 그녀의 로자리오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영영ㅡ 그녀를 찾아가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녀에게 로자리오가 가진 의미를 아는 당신은 지금이라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그것이 핑계였든, 혹은 진지한 사명감이었든 간에 당신은 그녀를 찾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 당신이 눈을 감으면 난 맨발로 집을 돌아다니며 춤을 춰. ” 기록적인 폭우입니다.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 같습니다. 이렇게 비가 쉬지않고 내리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실내에서 레몬을 곁들인 홍차와 함께 보는 비였더라면 보다 유쾌했을지도 모르지만, 당신은 지금 뒤집힐 듯이 흔들리는 소형 연락선 안에서 멀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갑판에서는 뱃사람들이 어떻게든 성난 바다를 헤치고 나아가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배편으로 분명 세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라고 들었는데... 벌써 여섯시간 째, 마리안느는 섬에 도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착은 고사하고 무사히 살아남을수 있을지조차 미지수입니다. 당신은 이대로 선실 안에서 기다릴 수도 있고, 갑판으로 나가 선원들에게 현재 상황에 대해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마리안느:(언제쯤 도착할 수 있는거지? 도착은...할 수 있나? 실내에서 비가 쏟아져내리는 바깥을 보다 갑판으로 나가 눈에 보이는 선원에게 다가간다.) 저기...! 혹시 언제쯤 섬에 닿을 수 있을까요? 당신이 선실에서 나와 물으니 선원이 발견하고 기겁합니다. “ 어이쿠, 선생님! 여긴 왜 나오셨어요! 들어가세요, 위험하다구요! ” 그 때 선원의 말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는 듯이 하늘이 깨질 듯 흔들립니다. 폭우가 맹수처럼 몰아치고, 배가 기우뚱 기웁니다. 또한, 언제쯤 섬에 도착하냐는 물음에는 이렇게 답합니다. “ 바로 요 앞이에요,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이 쯤이면 섬이 보일 법도 한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앞이 안보이는거죠. ” “ 참내, 뱃사람 생활 이십년만에 이 해협에서 이런 폭풍우를 겪어보는건 또 처음이에요. ” 선원이 말을 맺자마자 배가 심하게 기울어집니다. 갑판 위에 있던 모두가 비명을 지르며 한 쪽으로 우당탕 구르고 맙니다. 마리안느:..!(주변의 벽을 잡고서 최대한 균형을 맞추려 자세를 낮추었다. 조금만 더 가면... 배가 향하는 방향, 폭우 너머에 시선을 두었다.) 당신이 고개를 들고 폭우 너머를 바라보는 순간, 눈 앞에 집채만한 파도가 덮쳐옵니다. 누군가 비명을 지른 것 같기도 합니다만,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윽고, 굉음과 함께 거대한 파도가 배를 집어삼킵니다. 입이 짜고, 눈이 따끔거립니다. 온 몸이 찝찝하게 젖어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눈을 감았다 뜨면 보이는 것은 흐린 하늘입니다. 주위에서 사람들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따금 들려오는 갈매기 울음소리와 을씨년스러운 파도소리, 바람소리도요. 어딘가 호되게 부딪히거나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도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합니다. 마리안느:...아, 으....(머리를 한 손으로 꾹 누르며 비틀 몸을 일으킨다. 여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주변을 둘러보면 여기는, 황량한 해변가입니다. 부서진 나무조각들이 널부러져있고, 물에 젖은 나무상자 같은 것이 두서없이 쌓여있습니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어딘가의 사용인 같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여자들은 검은 하녀복에 흰 앞치마를, 남자들은 풋맨의 옷차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눈을 뜬 마리안느를 발견한 누군가가 먼 곳을 향해 소리칩니다. 이후 외침을 들은 남자가 당신에게 다가옵니다. 당신은 <미스터 그레이> 라는 사람과 대화하게 됩니다. 그렇게 불린 사람은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으로, 단정한 풋맨 정장을 차려입고 있습니다. 미스터 그레이:... 정신이 드셔서 다행입니다. 일어나실 수 있겠습니까? 그가 당신에게 손을 내밉니다. 손을 잡나요, 잡지 않나요? 마리안느:아...네..(손을 내밀어줬는데 잡지 않으면 예의가 아니겠지..그를 살짝 올려다보다 손을 잡고 일어난다.) 온 몸이 뻐근하긴 하지만 크게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기적이네요. 미스터 그레이:타고 계시던 연락선이 바로 이 앞에서 침몰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파도에 밀려 해안으로 떠밀려오신 것 같습니다. 운이 좋으셨군요.
마리안느:...!? 침몰이요!?(침몰이라는 단어에 바닷가로 고개를 돌린다. 그래서 주변에 이런 잔해가..다시금 그에게로 시선을 옮기고는) 그, 그럼 그 배에 있던 사람들은... ...
배에 있던 사람들에 대해 물으니 그레이는 고개를 젓습니다. ... 안타깝게도, 그들은 목숨을 부지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주변에 굴러다니는 나무조각들이나 물에 젖은 상자 따위는 침몰한 배의 잔재인가 봅니다. 마리안느:...아아...(또 이렇게 되었구나. 또 나만. ... ...잠시간의 침묵 후에 조심스레 입을 연다.) 그럼..혹시 이곳은 메리어빌 섬..인가요? 미스터 그레이:그렇습니다. 여기는 클레멘스 공작 각하 소유의 메리어빌 섬이죠. 인사가 늦었군요. 저는 이안 그레이, 각하를 위해 봉사하는 사용인입니다.
마리안느:(클레멘스...제대로 오긴 왔구나.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곤 저도 살짝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마리안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전 공작 각하의 부인...아! (이곳에 온 이유는 디안타에게 로자리오를 돌려주러 왔었지! 그 물건은 내 가방에 있었을텐데.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으로 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저, 혹시 같이 떠내려온 가방은..없었나요?
미스터 그레이:가방... 말입니까. (휘 주변을 둘러보곤 까딱) 아직 해안 수색 작업이 끝나지 않아 모르겠습니다만, 찾게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선생님의 가방 크기와 모양이 어떤지 알려주시겠습니까? 마리안느:앗, 네...크기는 이정도고, ...(손으로 허공에 크기를 가늠하듯 반듯한 정사각형을 그린다. 더하여 사람들이 대부분 사용하는 M사의 가방 브랜드라는 것까지. 가방의 손잡이에 분홍색 손수건이 묶여있는 것까지. 이정도면 헷갈리진 않을거라..주절주절 말한다.) 당신의 설명에 그레이는 주변 이들에게 그와 같은 모양의 가방 수색을 명합니다. 미스터 그레이:... 그런데.. 연락선을 타고 오셨다는 것은 메리어빌을 방문하실 예정이셨던 것 같은데, 맞습니까? 마리안느:아아...네. 맞습니다. 제 오랜 동창인 친구가 이곳에 살고 있거든요. 그래서 오랜만에 안부도 물을 겸, 친구가 잊고 간 물건도 돌려주러 왔습니다. 미스터 그레이:흠... 메리어빌에 친구 분이 있으셨군요. (가만 응시하다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찾으시는 이의 성함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마리안느:네, 디안타입니다. 이곳의 공작 각하의 부인이 된 사람인데요..당신은 이곳의 사용인이라 하셨으니, 제 친구도 당연 알고 계시겠지요. 디안타, 그 이름에 그레이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지는 것을 확인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찰나였을 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레이는 사무적인 낯으로 돌아옵니다. 그는 회중시계를 손 안에서 두어번 굴리다가, 시간을 확인하고 입을 엽니다. 미스터 그레이:... 그렇습니까. 그러면 따라오십시오, 메리어빌 저택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마리안느:...(방금 표정은 무엇이었지? 잘못 본 건가? 그가 입을 열 때까지 가만 입을 닫고 보다가 그의 말에 빙긋 웃는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레이를 따라 마리안느는 천천히 해변가를 벗어나, 완만한 언덕길을 올라갑니다. 언덕을 오르는 동안 당신은 문득 섬의 풍경이 무척 볼 만 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본토에서 보는 바다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검은 절벽이 깎아지른 듯 펼쳐져있고, 너른 바다가 희미한 회색빛으로 반짝입니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시원합니다. 비가 그친 후여서 그렇겠지요. 당신은 발목 언저리를 간질이는 들풀을 밟으며 언덕을 오릅니다. 오는 동안 그레이와 가벼운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는 좋은 대화상대는 아니지만 불성실한 대화상대 또한 아니니까요. 마리안느:...저기, 혹시 디안타는 이곳에서 잘 지내고 있나요? 아무래도 제가 사는 곳과 거리가 멀다보니, 주소를 알지 못해 편지를 보내는 것도 어렵더군요. 미스터 그레이:... ... 귀부인에 대한 이야기라면, 가시면 아시겠지요. 그는 디안타에 대해, 애매한 대답으로 일관합니다. 마리안느:아...(가시면? 일부러 숨기는 것 같은 대답에 저 또한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공작 각하께서는 어떤 분이신지 말씀을 듣고 싶어요. 디안타도, 제게 전혀 얘기를 해주지 않았거든요. 미스터 그레이:공작님은 좋은 분이십니다. 다만...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아니, 이 이상으로 말을 얹는 것은 아랫사람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니까요. 함구하겠습니다. 마리안느:...다만?(이후에 올 이야기는 뭘까, 더 이상 물어보는 건...그를 힐끔 보고는) ...그렇군요. 제가 하마터면 당신께 실례를 저지를 뻔 했네요. 외지인에게 주인의 험담을 하게 할 순 없죠.(약간의 농을 더해 말했다.) 미스터 그레이:실례라니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리지 않은 것은, 그 뒤의 말이 주인의 험담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용인인 제가, 감히 공작님을 '어떤 분'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마리안느:어머, 그런가요? 당신도 사람이니, 당신이 그분께 느낀 것이 어떤지 듣고 싶었는 걸요. 혹여 제가 만나게 된다면 어떤 것을 주의해야할지 알고 싶었답니다. 저는 손님이지만 친구의 남편 되는 분이니까요. 공작 각하께서는, 현재 이곳에 계시나요?
미스터 그레이:그렇습니다. 아마 선생님께서 저택에 도착하면, 곧 공작님을 만나게 될 겁니다. ... 연락선이 침몰했으니 아마 바로 돌아가실 수는 없을 테니까요. 새 연락선이 오려면 적어도 사나흘은 기다리셔야 합니다. 공작님께선 그동안 선생님이 저택에서 묵는 것을 당연하게 허락해주시겠죠.
오래되었지만 아름다운 저택이고, 관리가 잘 되어 있으니 지내시는 동안 불편함을 없을 겁니다.
마리안느:...잠시 들렀다 갈 예정이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 염치 불구하고 잠시 머무르겠습니다. 폐가 되지 않게 조용히 있을게요. 죄송하지만...도착하면 갈아입을 옷을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새삼 바닷물에 푹 젖은 옷가지를 내려다보았다.)
미스터 그레이:물론입니다. 저 언덕만 넘으면 도착하니, 방으로 먼저 안내드리겠습니다. 적당한 여벌 옷들도 구비되어 있으니 갈아입으실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그렇게 그레이와 대화를 나누며, 완만한 언덕을 오르자 눈 앞에 위풍당당한 저택이 한 채 보입니다. 적게 잡아도 기백년은 되었을 듯한 위세의 고저택입니다. 세월의 바람에 낡고 깎인 구석이 없지 않지만, 장식과 모서리마다 장인의 손을 타지 않은 곳이 없어보이는, 아름다운 저택입니다. 보는 것 만으로도 감탄을 금할 수 없군요. 그레이는 멈추지 않고 걸어갑니다. 그레이를 뒤를 따라, 당신은 너른 정원을 지나 저택 안으로 들어갑니다. 마호가니로 짠 육중한 정문을 열고 들어서면 저택 안은 고요합니다. 어느새 뉘엿뉘엿 해가 져 창 안으로 붉은 노을이 스며들어옵니다. 저택 안의 낮은 조도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과도 같습니다. 미스터 그레이:방으로 가셔서 옷을 갈아입으신 후에, 응접실로 내려오시면 공작님을 만나뵈실 수 있을겁니다. 저택에 도착하고 나서, 그레이는 그렇게 말하고 조금 멀리 떨어져있던 하녀에게 손짓합니다. 사용인은 당신에게 꾸벅 목례하더니, 위층으로 안내합니다. 그를 따라 복도의 끝에 다다르자 고풍스러운 호두나무 문이 보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 곳은 서관(西官)의 침실입니다. 욕실이 딸려있는 손님방이로군요. [ 침대, 창문, 옷장, 욕실 ] 을 조사할 수 있습니다. 마리안느:(저를 안내해준 사용인에게 감사하다는 의미의 인사를 건네고 방으로 들어갔다. 멋진 저택이네...속으로 감탄을 하며 방을 둘러본다. 먼저 욕실로 가야겠지.) 정교한 부조가 조각된 대리석 욕조와 고급스러운 목욕 용품들, 그리고 무엇보다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유리창이 매우 이색적입니다. 욕조에는 방금 채워둔 것 처럼 따끈따끈, 알맞은 온도의 목욕물이 받아져 있습니다. 마리안느:(목욕물에 손을 넣어 온도를 확인하고선 옷을 벗고 들어가 씻기로 한다...) 당신은 따땃한 욕조에 들어가, 씻고 나옵니다. 욕실에는 가운도 구비되어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마리안느:(몸을 깨끗이 씻고서 가운을 걸치고 끈으로 허리를 조였다. 사용한 욕실을 대강 정리하며 무언가 눈에 띄는 것은 없었나 살펴본다.) 지만 눈이 부시는 단 하나. 마리안느, 당신은 있습니다.
(나간다.)
(구비해둔 옷은 옷장에 있을까? 머리의 물기를 수건으로 꾹 누르며 빈 손으로 옷장을 열어본다.)
머리의 물기를 털고 옷장을 열면, 손님을 위한 옷가지들이 잔뜩 채워져 있습니다. 야회복, 이브닝 드레스, 나이트 가운 등을 포함하여 십수벌입니다. 당신의 체격에도 맞을만한 원피스나 가벼운 일상복 역시 준비되어 있습니다. 마리안느:(옷장에 무슨 옷이 이렇게... 가득 채워진 옷가지를 하나씩 훑어보다 제게 맞을 법한, 그나마 무난한 디자인의 원피스를 꺼내 입는다.) 마리안느:(옷을 갈아입고나니 이제서야 조금 안심이 드는 기분이다. 옷장 문을 닫고서 침대로 이동해 살펴본다.) 고급스러운 침구로 장식된 침대는 두 명이 써도 될 정도로 넓었지만 일인용입니다. 이불과 베개, 베드러너 모든 것이 한결같은 자주색입니다. 화사하고 예뻐보이는군요. 섬세하게 수놓인 자수와 보드라운 촉감 등으로 미루어보아 상당한 고급품인 것 같습니다. 마리안느:(손에 닿는 촉감이 부드러운게 기분이 좋은걸...기왕 묵기로 한 거 디안타를 만나고 기분 좋게 잠들 수 있다면 좋을텐데. 잠깐의 침대 점검을 한 후 창가로 다가간다.) 잠깐 침대 점검을 하던 당신, <통찰> 판정. 부드러운 침대를 생각하며, 창 밖을 보니 해안가의 풍광이 눈에 들어옵니다. 검은 절벽에 부딪혀 와르르 부서지는 하얀 포말에 잠시 넋을 빼앗깁니다. 이런 저택에서 살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문득 디안타의 생각이 납니다. 그녀는 행복할까요. 어쩌면 소식이 끊긴 것이 행복에 겨워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리안느:(그렇다면 좋을텐데. ...바람을 맞으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밑에서 기다릴 공작님이 떠올라 호닥 내려가기로 한다.) 당신이 호닥 방을 나서면 방 앞에서 아까의 사용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소 기묘하게 당신을 쳐다보다가, 이윽고 별 말 없이 응접실로 안내합니다. 마리안느는 사용인을 따라 복도를 지나고 계단을 내려갑니다. 겉으로 보았을때의 사용인은 대강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상당히 어립니다. 말을 걸면, 사용인은 최소한의 대답만 합니다. 당신을 명백하게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안내를 받아 무사히 응접실에 도착합니다.
안에 들어서자 타오르는 벽난로와 고급스러운 가죽쇼파, 그리고 원목 테이블이 보입니다.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멀끔하고 반듯한 인상의 남자입니다. 공작은 당신을 보고선 빙그레 웃으며 일어섭니다. 클레멘스 공작:어서오십시오. 올 여름의 첫 방문객을 이런 식으로 맞게 되다니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환영합니다. 공작은 사람 좋아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맞이합니다. 클레멘스 공작:... 그래서, 이 외딴 섬에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마리안느:아, 안녕하세요.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작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선) 이곳엔 제 친구를 만나러 방문했습니다. 디안타도 이곳에서 지낸다고... 당신의 말을 듣고 공작의 얼굴이 일순 딱딱하게 굳습니다. 이어 괴로운 듯한 신음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옵니다. 클레멘스 공작:... ... 소식을 듣지 못하셨나보군요. 디안타, 아니... 제 아내는 삼 년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공작은 한참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가, 침통한 목소리로 부인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클레멘스 공작:... 그녀는 종종 조각배를 타고 근해에 나가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 주변의 풍광은 굉장히 아름다우니까요. 그런데 삼 년 전, 마치 오늘 같은 갑작스러운 폭풍우가 바다를 악마로 만들었습니다.
그녀가 탔던 배는 반동강이 나서 해안가로 밀려왔고, 시신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게, 칠월의 수요일이었죠. 그 날의 끔찍하던 폭풍우가 잊혀지질 않는군요…...
마리안느:3년 전이라니요. 그, 그런, ... ...아...(그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다. 디안타가, 디안타, 그 아이가, ... ...) 시신을...찾지 못하셨다고요...그렇게 죽을 아이가 아닐텐데... ...
(문득 아직 찾지 못한 가방 속의 그녀의 로자리오가 떠올랐다. 연락이 끊긴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녀의 모습이 아직 생생히 떠오르는데, 그런...)
(가보면 안다는 말이 이것이었나. 이어 이 저택으로 올라오는 언덕길에서 사용인이 말하던 문장이 떠올랐다.) 디안타가 쓰던 것들은..모두 정리하셨나요?
클레멘스 공작:... 제 아내는 우아한 숙녀였고, 모두의 귀감이었죠. 그런 그녀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거라곤 저도, 아직까지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씁쓸하게 말을 맺고 고개를 저어) 물건을 정리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사실... 그걸 보는 것도 제게는 괴로운 일이라. 찾지 않고 있었습니다. 머무르는 동안 시간이 되면, 아내의 방은 동관에 있으니 찾아가보시는 것도 좋겠죠. 하늘에 있는 제 아내도 친구가 찾아온 것을 분명 기뻐할 테니까요.
이후 짧은 애도가 이어지고, 공작은 연락선이 올 때까지 저택에서 편하게 지내라는 말로 대화를 끝맺습니다. 아직 온전히 믿어지지 않는 당신이 자리에서 일어서면 공작이 배웅합니다. 허기질테니 방으로 식사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려두겠다는 말을 덧붙이면서요. 디안타가 죽었다는 사실을 들은 당신은 분명히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허무할수도, 슬플 수도, 오래 전에 가라앉은 줄 알았던 마음의 파도가 다시금 사납게 일렁이는 것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내게 고작 이런 꼴을 보여주려고 십 년 동안 편지 한 줄 없었나. 묘한 원망의 감정을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어찌되었든, 당신은 식사가 준비된 테이블에 앉습니다. 입맛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배는 고프니까요. 멍하니 있던 당신은 침대 아래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떨어져 있는 것을 봅니다. 마리안느:...?(테이블에 앉아 한숨을 쉬며 음식이 식어가는 것만 바라보다 시야에 들어온 반짝이는 것을 향해 침대 아래로 손을 뻗는다.) 집어보니, 프리지아 꽃 모양의 귀걸이 한 짝입니다. 나머지 한 짝은 어디로 굴러갔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득, 기묘한 위화감이 뒷목을 스칩니다. 그야 저택의 여주인 물건이 저택에서 발견되는건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디안타가 실수로 떨어트렸거나, 잊어버렸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왜 손님방에서? 여전히 의문은 남습니다. 마리안느:(귀걸이를 살펴본다. 이곳에 오래 있었다면 먼지가 쌓여있겠지. 또 흠이 난 곳은 없었는지 이리저리 둘러본다.) 먼지는 쌓여 있지만, 특별히 흠이 난 곳은 없습니다. 학원에서 지낼 때 다같이 맞춘 것으로... 사실 디안타는 끼고 다닌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새 것 같아요.
마리안느:(끼고 다니는 걸 거의 본 적이 없었는데 왜 이제와서야 여기에? 귀걸이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옷 주머니에 넣었다. 혹시 지금 디안타의 방으로 가볼 수 있나?) 어떻든간에, 당신은 굉장히 험난한 하루를 보냈으니까요. 이 피로감을 해결하려면, 슬슬 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마리안느:...(어쩔 수 없지...식어버린 남은 음식 위에 뚜껑을 덮어두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도록 한다..) 침대에 누우면, 아득히 몰려오는 졸음으로 온몸이 무거워집니다. 깜빡. 깜빡. 점점 정신이 흐려지기 시작합니다. 흰 옷을 입은 여자가 어두운 방 안에서 춤을 추고 있습니다. 마치 누군가 돌로 몸을 눌러둔 것처럼 온 몸이 무겁습니다. 여자는 아주 조용하게 춤을 춥니다. 맨발입니다. 눈을 떠보니 하녀아이가 깨어난 당신을 보고 다소 어정쩡한 자세로 굳어있습니다. 당신은 잠에서 막 깨어나 멍한 정신으로 그녀를 바라봅니다. 뭐죠…? 아마 당신이 잠든 사이 식어버린 음식 대신, 새로운 아침식사를 두고 가려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창가의 테이블에도 어제와 다른 음식이 담긴 쟁반이 놓여있습니다. 하지만... 메이드는 필요 이상으로 긴장한 듯한 기색입니다. 그녀가 침대 밑으로 몸을 숙였다가 일어난 자세에서 당신과 마주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안느:...지금 뭘 하시는 건가요? 무언가 떨어뜨리기라도...(부자연스러운 자세에 의아해 말을 건넨다.) 메이드, 릴리벨:핫, 네... 넷! 아침... 식사를 준비해 드리려고... 그, 아깐 포크를 떨어트려서... 죄송합니다! 당신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가, 대답하는 둥 마는 둥 횡설수설 하고서...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쏜살같이 나가버리네요. 이상한 반응입니다. 어쨌든 메이드가 차려둔 식사는 구운 소세지와 양송이, 수란과 오믈렛, 베이크드 빈즈, 토마토와 올리브절임, 그리고 레몬수입니다. 맛있겠네요. 그러고보니 어제 제대로 식사하지 못했죠.
마리안느:(몸을 일으켜선 기지개를 켜고 침대에서 나온다. 욕실에 들어가 짧게 세안 정도만 하고 나와 테이블에 앉아 식기를 들었다.) (오늘은 디안타의 방에 들어가도 되냐고 여쭤봐야겠어. 오믈렛을 한 입 크기로 잘라 입에 넣었다.)
마리안느는 오물오물 오믈렛을 먹으며, 아침 식사를 합니다. 마리안느:(대강의 식사를 하고서, 깔끔하게 단장을 마치고는 방을 나서 밑으로 내려간다. 그러니까, 디안타의 방이 동관에 있다고 했던가?) 식사를 마치고 방을 나가기 전, 누군가 방문을 두드립니다. 똑똑. 미스터 그레이:... 좋은 아침입니다. 간 밤 편히 주무셨는지요. 마리안느:(방 밖으로 나서려던 찰나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조심히 문을 열었다. 맞춘 듯한 두 사람의 말에 고개를 잘게 끄덕인다.) 어제는...감사했습니다. 덕분에 평안히 잠을 청할 수 있었습니다.(비록 꿈은 요상했지만.) ...헌데 이곳까진 왜...?
그런 그레이의 뒤에는 십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풋맨 차림의 소년이 서있습니다. 미스터 그레이:여기에 머무시는 동안 선생님의 편의를 돌봐드릴 아이를 데려왔습니다. 올리버. 올리버라고 불린 풋맨은 당신에게 고개숙여 인사합니다. 어제의 사용인처럼, 그리고 아침의 하녀처럼 명백히 경계하고 있지는 않지만 다소 건방진 듯한 눈빛입니다. 미스터 그레이:... 그리고 좋은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선생님의 짐가방을 해안가에서 찾았다고 합니다. 용케 파도를 타고 섬에 떠밀려온 모양입니다. 지금 세탁실에서 세척중이니, 건조 후 바로 돌려드리겠습니다.
마리안느:(올리버라고 불린 소년의 표정을 살피다 미스터 그레이의 말에 화색을 띄운다.) 아...! 정말인가요? 그 안에 있던 물건들도...무사한가요? 미스터 그레이:발견된 가방은 잠긴 상태였고, 저희가 다른 것을 손대진 않았으니 물건 또한 무사할 겁니다. ... 음. 벌써 시간이.. 그럼 저는 저택의 일이 있어서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그레이는 회중시계를 한 번 들여다보고, 당신에게 인사한 후 자리를 떠납니다. 남은 올리버가 시킬 일이 있으면 빨리 하라는 듯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에게 저택의 안내를 부탁하거나 특정 장소로 데려다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리안느:(로자리오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웃음을 내비친다. 이어 옆에서 들린 말에 아차,) 어제 공작님의 허락을 받아 오늘 디안타의 방에 가보려 하는데, 혹시 안내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풋맨, 올리버:뭐... 그러죠. 안내를 하는 게 제 일이니까요. 올리버와 함께 동관, 서관, 다이닝룸, 마구간, 보트보관소 총 다섯 군데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전부 봐도 되고, 일부만 봐도 괜찮지만... 안내의 시작은 서관, 끝은 동관이 됩니다. 그러니 디안타의 방을 보는 건 마지막이 되겠네요. 풋맨, 올리버:우선 서관부터 안내할게요. 그쪽이 더 가까우니까? (건방진 눈빛.) 마리안느:네. 저는 안내받는 입장이고, 오늘 안에 디안타의 방을 보면 되니 천천히 가셔도 된답니다. 잘 부탁드릴게요.(빙그레 웃으며 답한다. 경계하는 것보단 오히려 이런 태도가 더 마음에 놓일지도..) 개축한지 얼마 되지 않은 티가 납니다. 깔끔하게 관리되어있습니다. 풋맨, 올리버:흐음~... 여기 서관은 주인마님 돌아가신 다음에 개축했다고 해요. 원래는 복도도 좁았고 오래되어서 보기 안좋은 방들도 많았는데 창도 크게 내고 가구도 새로 들여놔서 가끔 오는 손님들이 아주 칭찬하시죠.
뭐, 주로 손님방이나 응접실이 서관에 있어요.
공작님은 원래 동관을 쓰셨는데, 마님 돌아가신 후에 서관으로 옮기셨대요.
어쩌면 개축도 그래서 한 걸지도 모르죠. 마님 쓰시던 건물을 그대로 쓰는 게 힘드셨을지도.
마리안느:아하...(그의 설명에 납득이 가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풋맨, 올리버:선생님은 그... 돌아가신 주인마님의 친구 분이라고 했죠? 마리안느:아, 네. 마리안느라고 불러도 돼요. 혹시 디안타가 죽기 전부터 일하던 분이신가요? 풋맨, 올리버:그럼 편하게 얘기할게요, 마리안느. (냉큼 받고는) 근데 저는 여기서 일한지 이 년 반 밖에 안되었어요. 그... 뭐냐, 그래서 주인마님에 대해선 아는 게 없거든요. (으쓱)
하지만 다른 사용인들 말로는 모든 사람들에게 상냥하시고, 똑똑하시고, 매력있고, 기품있고, 또 우아한 분이셨다고 하던데요.
아무튼 둘도 없는 귀부인이라고 들었어요.
다소...? 위화감이 느껴질만큼 거북한 찬사입니다. 마리안느:(흠...................................) 그렇...군요. 디안타가 이곳 사람들에게 매우 친절히 대해주었나 보네요. 편지의 답도 해주었으면 좋았을텐데...(아쉬운 듯 말끝을 흐린다.)
풋맨, 올리버:아니 편지 답도 안해줬어요?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친구 맞아요? (갑자기 팩폭을 날린다.) 마리안느:............................................................... 맞...
맞을..걸...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
풋맨, 올리버:그럼 뭐 사정이 있었나보죠. (올리버 딴엔 크게 의미를 담아 한 말도 아니었기에, 적당히 넘긴다.) 어쨌든... 여긴 다 본것 같으니 슬슬 다른 곳으로 갈까요. 마리안느:(순간 처음 만났을 때의 생각이 나 속으로 꾹 눌러담고서) ..아, 네. 다음은 어딘가요? 풋맨, 올리버:다음... 어디가 좋으세요? 아니면 대충 제가 가는 대로 안내받으셔도 되고요. (뻔뻔) 마리안느:저는 이곳의 구조를 잘 모르니...올리버가 안내하시고픈 곳으로 가도 좋답니다.(떠넘기기) 풋맨, 올리버:... ? 뭐, 그럼 다이닝룸으로 안내할게요. (떠넘겨짐) 마리안느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낍니다. 집요하고, 기분 나쁘고, 끈덕진 시선입니다. 올리버에게 시선에 대해 말해도 헛소리하지 말라는 반응만 돌아옵니다. 시선의 출처를 찾아보려고 해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다이닝룸에 들어서자 화병을 닦고 있던 메이드가 화들짝 놀라면서 꽃병을 떨어트립니다. 풋맨, 올리버:안나! 너…그거 주인마님이 아끼시던 꽃병이잖아!
메이드는 바들바들 떨면서 어쩔 줄 모르고 깨진 꽃병을 내려다봅니다.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군요. 다시 붙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메이드, 안나:그, 그게... 괜찮... 습니다. 저는... 소리친 올리버는 혀를 차며 꽃병의 잔해를 수습합니다. 풋맨, 올리버:이건 하녀장님께 보고드릴테니 월급 삭감은 각오해둬. 마리안느:그으...저 꽃병은...?(둘 사이에서 슬쩍 눈치를 보듯 살피다 힐끔) 꽃병은 입구가 꽃잎 모양으로 벌어져있고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 모양의 유리 꽃병입니다. 디안타가 아낀 물건이라니, 그런 것 치고 하녀와 올리버가 보이는 반응은 다소 미묘하네요. 마치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큰 실수를 쳤을 때의 두려움이라기보다, 어떤 곤혹스러움과 짜증스러움에 더 가까운…… 시무룩해보이는 하녀아이는 유리조각을 치우며 울상을 짓습니다. 풋맨, 올리버:주인마님 거였는데... 뭐, 어쩔 수 없죠. 깨진 거... (쯧 혀를 찬다.) 마리안느:...으음...(이들의 태도에 무언가 께름칙한 느낌이 들어 그저 말 없이 메이드가 치우는 꽃병 조각을 보고만 있다.) 풋맨, 올리버:에휴... 저거 치우게 두고, 우린 다른 곳으로 갈까요. 마리안느:...아, 네. 가죠.(꽃병이 신경쓰여 한 번쯤 더 돌아보고, 올리버의 뒤를 따라가기로 한다.) 또다시 누군가의 시선을 느낍니다. 집요하고, 기분 나쁘고, 끈덕진 시선입니다. 준마 다섯마리 정도가 매여있고, 공작가의 마구간 답게 관리가 잘 되어있습니다. 마구간지기가 우리를 보고 꾸벅 고개를 숙입니다. 자세가 구부정하고 낯빛이 어두운 초로의 사내입니다. 풋맨, 올리버:메리어빌은 섬이지만 공작님이 사냥을 나가시거나 무거운 짐을 옮길 일이 있을 때 종종 말이 필요해요. (마구간지기를 가리키며) 여기 이 로버트 씨가 관리해주고 계시죠.
그렇습니다. 이 로버트 씨는 그러나 두 사람을 본체만체 하며 말고삐와 등자를 갈무리 하고 있습니다.
마리안느:아아,(로버트에게 인사를 하..려다 본체만체함에 머쓱해져 옷가짐이나 단정히 한다...) 그가 약간 다리를 절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안느:(슬쩍 목소리를 낮추어 올리버에게 소근) 혹시..다치신 건가요? 이분... 풋맨, 올리버:네. 그게 참... 하필 또 주인마님이 돌아가시던 날 바다에 수색을 나갔다가 저렇게 됐대요. 바위 틈새에 발목이 끼었다나. (소근소근) 마리안느:아아...(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눈썹을 축 내렸다.) 풋맨, 올리버:... 흠흠, 아무래도 여긴 잘못 안내했나봐요. 다른 곳을 보여줄게요! 이후 분위기를 무마하려는 듯 올리버는 다른 곳을 보여주겠다며 당신의 등을 떠밉니다. 마구간을 나가는 마리안느의 등 뒤로 로버트의 서늘한 눈길이 끈질기게 따라붙습니다. 뒷덜미가 섬뜩합니다.
그렇게 마구간 밖으로 나가자, 멀리서 누군가가 소리칩니다. 풋맨, 올리버:아, 제가 그거 삼층 건조실에 옮겨둔다고 했잖아요! 하고 맞대답을 하고, 곧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말과 함께 여인에게로 뛰어갑니다. 마리안느는 마구간 앞에 덩그러니.. 남겨졌습니다.
“ ...래서, 유령… ...랬대. 진짜라니까? ” 주위를 둘러보면, 주방으로 이어지는 쪽문 틈에서 나는 소리인 것 같습니다.
문 쪽으로 다가가서 대화를 엿듣거나 대화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마리안느:(슬쩍...문 가까이 서서 대화를 엿들어본다.) “ 그거야 나도 모르지… 아무튼 흰 옷에 맨발 차림이었다더라. 안나가 말한 것과 똑같지 않아? ” “ 그걸 믿어? 릴리벨은 손버릇도 나쁘잖아. ” “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너도 참…... ” 당신은 이쯤에서 하녀로 추정되는 대화자들에게 엿듣고 있었음을 들키게 됩니다.
놀란 당신을 보고, 하녀들은 심하게 경계합니다. 단지 엿듣고 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 외지인에 대한 반사적인 거부감인 것 같습니다. 이들의 경계를 풀기 위해선... <대인> 판정. 마리안느:앗, 아아...안녕하세요. 어제부터 잠시 이곳에 머무르게 된 사람인데요.. 올리버라는 분께 안내를 받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답니다. 올리버는 잠시 다른 분의 호출로 자리를 비우셨고요.
“ ... 이번에 방문하신 분.. 이신가요. ” 당신의 말에 가까스로 하녀 중 한 명이 입을 엽니다. “ 저흰 그저 저택의 유령 이야기를...... 어맛, 시간 좀 봐. 식사 준비 해야하는데. ” 마리안느:저택의..유령이요? 잠깐, 혹시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들은 것 중 나온 것은 꿈에서 본 모습과 비슷했던지라, 마음에 걸려 급히 말을 꺼낸다.) 그러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려 해도, 이후로 하녀는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하녀들은 당신을 기묘한 눈초리로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인사하고 뒷걸음질로 천천히 멀어집니다. 이윽고 뒤를 돌아 주방 안 쪽으로 사라집니다. 풋맨, 올리버:아아~... 죄송해요. 메이 부인은 매번 귀찮게 일을 두 번씩 하게 만든다니까. (투덜투덜) 마리안느:...아! 마침 잘 오셨어요, 올리버.(답을 듣지 못해 찝찝하던 중 반가운 듯 다가서서는) 혹시 올리버는 이 저택의 유령에 대해서 알고계신가요? 풋맨, 올리버:유령?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전 여기 살면서 눈꼽만큼도 본 적 없는데. (갑자기 무슨 괴담이냐며 가볍게 손사레를 쳤다.) 마리안느:어어...정말인가요? 그렇지만...(곰곰...) 혹시 올리버는 동관에 자주 가시는 편인가요? 풋맨, 올리버:동관에요? (갸웃) 아뇨... 거긴 건물도 좀 옛스럽고, 사용인들도 많이 배치되어 있지 않아요. 그래서 거의 갈 일이 없어요. 주인마님이 돌아가시기 전이라면 모를까... 제가 일할 때는 공작님도 서관에 계셨으니까요.
마리안느:그렇군요...(시무룩...) ...그런데 이곳에 계신 분들은...올리버와 공작님을 제외하고선 전부 절 경계하시는 것 같아요. 외지인이라 그런 걸까요? 풋맨, 올리버:글쎄... 기분 탓 아닐까요? 뭐, 여기 분들이 좀 외지인이 익숙하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쁜 사람들은 아니니까요. (가볍게 으쓱하곤 별말을 다한다는 태도를 보인다.) 건방진 올리버는 슬슬 다른 장소로 이동하자고 합니다. 누군가의 웃음소리를 느낍니다. 섬뜩하고, 꺼림칙한 웃음소리입니다. 홱 뒤를 돌아보고 주위를 살펴봐도 도대체 누가 낸 웃음소리인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는 당신을 올리버가 왠지 이상한 눈으로 쳐다봅니다. 다음으로 올리버가 안내한 보트 보관소는, 저택에서 조금 떨어진 해안가 쪽에 있습니다. 언덕 아래로 내려가 해안가 쪽으로 걷자, 곧 파도소리가 들려옵니다. 어제도 생각했지만 섬의 풍광은 정말로 나쁜 편이 아닙니다. 바다와 절벽, 흐린 하늘, 웃자란 들풀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파도가 밀려왔다가, 밀려갑니다. 바위에 부딪혀 하얀 물거품이 아스라집니다. 올리버가 손가락으로 해안가 한 귀퉁이에 작게 지어진 오두막집을 가리킵니다. 풋맨, 올리버:뭐 사실 별 건 없는데. 그냥 바람 쐬러 나왔다고 생각하고 간단히 보고 갑시다. 아 참, 보트 보관소 근처에는 미친놈이 하나 있으니 조심하세요.
풋맨, 올리버:네? 라니... (멀뚱) 그냥 말 그대로 미친놈이란 뜻이에요. 당황한 반응에, 올리버는 마지못해 덧붙여 봅니다. 풋맨, 올리버:벤자민... 이라는 놈인데요, 좀 제정신이 아니에요. 매일 술에 절어있는 망나니죠. 옛날에 저택에서 일했던 하녀의 아들이라던데, 누굴 해칠 깜냥은 없는 놈이라... 공작님께서 그냥 보트 보관소에 딸린 오두막에서 살게 해주셨다더군요.
마리안느:그렇군요...저런. 그 분은 무슨 일이 있었던거죠? 풋맨, 올리버:음... 그건 모르겠어요. 사실 그 놈이랑 엮이고 싶지 않아서요. (절레절레...)
대화를 나누며 보트 보관소 가까이 가보면, 정말 특별히 볼 건 없어보입니다. 작은 오두막 두 채가 나란히 지어진 모습이 끝입니다. 안에 들어가봐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한 기물은 없고, 근사한 보트 한 척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풋맨, 올리버:이 보트 완전 멋지죠? 전에 주인마님이 타고 나가신 배가 부서진 바람에 새로 한 척을 지어야만 했대요. 원래 공작님은 가끔 근해에 낚시를 가시거나 날씨가 좋은 날 뱃놀이를 가곤 하셨는데 주인마님 가시고 나서는 거들떠도 안보시더래요.
그래서 가끔 사용인들이 업무용으로 필요할 때 사용하는 것 말고는 여기 계속 처박혀있어요.
... 뭐, 저도 몰래 쓴 적 있지만요~ (찡긋)
마리안느:아...(마지막 말에 그를 보며 마치 장난이라도 치는 양 웃음을 보였다.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말하면 어쩌려고? 진짜로 불어버릴 작정은 아니지만.) 아깝네요. 그래도 멋진 보트인데. ...그런 일만 없었다면...말예요.(보관된 보트를 손끝으로 살짝 만져보고는 금세 차분한 표정이 되었다.)
보트를 살짝 만지자 부스럭, 하고 인기척이 납니다. 방수천으로 덮여있던 보트 아래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입니다. 마리안느:...!(깜짝 놀라서 뒷걸음질) 뭐..무언가.. 그러다 갑자기 꿈틀거리던 덩어리가 벌떡! 일어납니다. 풋맨, 올리버:아, XX... 깜짝 놀랐잖아요! 마리안느:(갑작스레 튀어난 사람의 형상에 꿈뻑...) ...혹시 이 분이...? 올리버는 욕설을 주워섬기다가 멈칫, 당신의 눈치를 봅니다. 벤자민은 상당히 술에 취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풋맨, 올리버:아... 맞아요, 이 놈이 벤자민이에요. 여기서 이러고 자는 줄은 몰랐는데...... 하, 그만 다른 곳으로 가죠.
올리버는 그가 어지간히 싫은지, 당신에게 그만 저택으로 돌아가자는 식으로 얘기하고 휙 나가버립니다.
그런 올리버를 따라 저택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남아서 벤자민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습니다. 저어..혹시 이 아래에서 주무시고 계셨던 건가요?
건방진 올리버는 당신을 기다리지 않고 정말 저택으로 돌아가버리기 때문에, 그에게 남은 구역을 안내받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말을 걸었지만, 벤자민은 엄청나게 취해있는 상태입니다. 저기..~(손 휘적..)
마리안느:아아, 마리안느..입니다. 어제 불가피한 상황으로 잠시 머무르게 되었어요. 이제 그에게 옛날 사건에 대해 물을 수 있을 것 같네요. “ 말안내? 난 말이지... 로버트가 아니라고... ” 마리안느:아뇨, 아뇨. 말안내를 부탁하려던게 아니라 제 이름이 마리안느입니다. 마리..나 안나로 불러주셔도 괜찮아요. 그보다..벤자민 씨죠? 당신은..
“ 어어? 맞... 아, 나 벤자민. 왜? 술 마시자고? ” 마리안느:술은 다음에 청해도 될까요? 다름이 아니라...혹시 3년 전의 사건에 대해 무언가 알고계신 것이 있는지 궁금해서요. “ 아… 3년... 전, 그거 주인마님 얘기야? ” “ 킥킥... 그래, 웃기지. 저택 밖으로 한 발짝 나오지도 못하던 사람이 괜히 배를 탄다고 설치니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거 아냐...... ” 벤자민은 비웃음과 함께 보트 안에 다시 털썩 누워버립니다. 마리안느:저택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다고요? 저기요, 저기요!(깨우려 흔들흔들) 믿을 수가 없군요. 마리안느가 흔들흔들 깨워도 벤자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리안느:... ...(이상하다. 분명 디안타는 종종 조각배를 타고 나가는 걸 좋아한다 했는데? 다음에 다시 와야겠어. 어쩔 수 없이 깨우는 것을 그만두기로 한다.) (이곳에 더 볼 일이 없다면 나가자. 오두막이 한 채 더 있던 것 같은데...)
한 채 더 있는 벤자민의 오두막은, 잠겨있습니다. 주인이 저 꼴이니 다음에 와 보는게 좋겠네요.
마리안느:(아쉽...)(그러니까...이제 더 어디로 가야할까. 이곳에서 가까운 곳은 어디지? 주변을 둘러본다.) 올리버가 사라졌기 때문에 당신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
서관으로 돌아가거나 동관으로 가는 길을 혼자 힘으로 찾아보는 겁니다. 마리안느:....(동관으로 가는 길을 찾아보자! 분명 가던 길과 반대쪽으로 가면 동관이 나오지 않을까) (가던 길? 오던 길의 반대방향..)
좋아요. 당신은 반대쪽 길을 따라가며, 무사히 동관을 찾아냅니다. 동관은 창이 넓고 화사한 분위기로 꾸며져있던 서관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입니다. 길고 좁은 창과 옛스러운 가구들, 어두운 자주색 커튼들. 어쩐지 건물 자체에 압도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걸을 때마다 바닥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군요. 디안타는 이런 곳에서 살았군요. 마리안느는 <하녀장 사라>를 만날 수 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차려입고 있으며 행동거지에 절도가 배어있습니다. 정면으로 마주한 그녀의 눈빛은 당신을 꿰뚫어보는 듯 합니다. 조용하고 날카로운 송곳과도 같습니다. 아주 짧은 침묵이 기이하게 길게 느껴집니다. 하녀장, 사라:... 이번에 방문하신 선생님이시군요. 주인마님의 방을 보러 오셨나요. 마리안느:...아아, 네. 안녕하세요.(분위기에 내심 긴장해버렸는지 1초 느린 박자로 짧게 인사했다. 힐끔..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돌리고) 디안타의 방에...들어가봐도 괜찮을까요?
하녀장, 사라:(조금의 시간이 흐른 후에, 뒤를 따라오라는 듯 계단을 오른다.) 안내해 드리죠. 마리안느:네...(얌전히 뒤를 따라 계단을 올라간다.) 당신은 사라의 뒤를 따라 얌전히 동관의 2층으로 향합니다. 2층으로 올라가 복도 가장 끝에 있는 방으로 향합니다. 마호가니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자줏빛으로 꾸며진 넓은 침실이 눈에 들어옵니다. 자줏빛 벨벳 커튼, 협죽도와 백합이 수놓아진 침구, 상앗빛 석재로 만들어진 화장대, 그리고 테라스로 향하는 창문을 열면…… 바다 절벽이 한 눈에 보입니다. 멀리서 파도가 칩니다. 스산한 바닷바람이 창을 지나 당신의 뺨을 스칩니다. 하녀장, 사라:아주 아름다운 방이죠. 어쩌면 이 저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일지도 모릅니다. 생전 마님께서 저 창가에 서 계셨던 모습이 눈에 선하군요. 눈이 부시도록 웃고 계시던 그 모습이 아직도 꿈에서 본 듯 생생합니다.
사라는 디안타에 대해 여지없는 호평과 찬사를 차분하게 늘어놓습니다. 귀부인 중의 귀부인이었고, 만인의 귀감이었고, 저택은 늘 그녀 덕분에 밝았고, 모두가 그녀를 좋아했고, 마리안느:아아...(한치의 빗나감 없이 같은 얘기만 이번으로 몇번째인지. 제 기억 속의 모습과 너무도 달라 이곳에서 어떻게 지낸건지 감이 오지 않는다.) 저...디안타는, 이곳에서 어떻게 지냈나요? 공작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종종 조각배를 타고 나가길 좋아했다고...
하녀장, 사라:네, 그러셨죠. 그 폭풍우가 치던 날만 아니었다면...... 그런 분이 떠나신 게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그녀는 당신이 몇번이고 들은 이야기만 반복하다, 말미에 묘한 말을 덧붙입니다. 하녀장, 사라:... 그런데 선생님, 유령이 돌아다닌다는 소문은 들으셨나요. 마리안느:...아, 지나가는 말로는...흰 옷에 맨발이라고...혹시 아시는 게 있나요?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입니다. 사라는 이어 말합니다. 하녀장, 사라:아뇨.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마님에 대한 좋은 기억만 가지고 속히 떠나셨으면 합니다. 선생님께도 그 편이 더 좋으실 테니까요.
사라는 입을 다물고, 당신을 다시 서관으로 안내합니다. 돌아오는 길, 어디선가 아득한 비명소리를 듣습니다. 주위를 탐색해봐도 비명소리의 근원은 알 수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비명소리에 대해 물어도 알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뿐입니다. 낮에 있었던 일들 중 몇 가지가 자꾸만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맴돕니다. 이 아름다운 대저택은 도대체 무엇을 숨기고 있는걸까요. 물론 야심한 시각에 손님이 혼자 저택 안을 돌아다니는 것은 전혀 양식있는 행동이 아니지만요. 아주 야심한 시각이라면, 적어도 자정 후엔 몰래 방 바깥으로 나가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리안느:(동관에 또 한 번 가봐야할 것 같은데...나는 짐 가방을 돌려 받았나?) (그럼 자정까지 기다렸다가..몰래 나가보기로 하자..)
마리안느:(방 밖에 인기척이 들리는지 슬쩍 들어본다.) 마리안느:(조심스럽게 문을 열고...나가보자...다닐 수 있을만큼 시야는 트여있나?) 마리안느는 문이 단단히 잠겨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철컥철컥. 아무리 손잡이를 돌려봐도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분명히 손을 놓고 있는데도 문고리가 돌아갑니다. 누가 밖에서 열기 위해 돌리고 있는 것처럼요. 마리안느:........??(놀라 뒷걸음질을 친다.) 누...누구세요?
소리가 난 다음에 문 밖은 거짓말처럼 조용해집니다. 그대로 잠을 잘 수도 있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샐 수도 있습니다. (잠을...잘 수는 있을까?)
잠을 못자고 뒤척이던 당신은 환각인지 꿈인지 모를 것을 봅니다. 처음 여기 도착해서 꾸었던 꿈과 같은 꿈입니다. 흰 옷을 입은 여자가 어두운 방 안에서 춤을 추고 있습니다. 이따금 노래를 부르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벌어진 입술 사이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습니다. 문득, 당신은 그 얼굴이 낯설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녀가 큰 원을 그리고, 다시 몸을 옹송그리고… … 마리안느, 당신을 향해 천천히 춤추듯 다가옵니다. 거칠지만 부드러운 손길. 내가 기억하던 바로 그 사람. 디안타의 입술이 달싹입니다. 어쩐지 영 몸이 찌뿌둥하군요. 어제의 기묘한 경험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간에 아침이 밝았고, 마리안느는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밖으로 나가보려고 하면 문은 언제 잠겨있었냐는듯이 쉽게 열립니다. 문 밖에 어떤 흔적이 남은 것도 아니고, 마치 간밤에 겪은 일이 꿈은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로 모든 것이 멀쩡합니다. 그 때, 그레이가 당신의 객실 쪽으로 걸어옵니다. 그리고 아침인사를 건넵니다. 마리안느:... ...그레이...(어김없이 오늘도 찾아온 그를 가만 보다가) ...저...혹시 밤마다 객실은 잠구어놓나요?
그렇게 물으며 어젯밤 일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레이는 꿈이라도 꾼 거 아니냐는 말을 정중하게 돌려서 합니다. 미스터 그레이:실례지만 선생님, 혹시 지난 밤 지나치게 피곤하셨던 건 아닙니까. 혹시 대접에 부족함이 있었더라면…... 아무튼 그의 용건은 <짐가방>을 당신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일전에 세탁과 건조가 끝나면 돌려주겠다고 했지요. 내용물이 전부 있는지 그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리안느:...아, 감사합니다. 잠시만...(가방을 내려놓고 안을 열어 짐들을 확인해본다.) 가방을 열어보면 단정하게 물품들이 정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겉옷, 우산, 지갑...... 어라,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디안타의 로자리오가 보이지 않습니다. 마리안느:...? 저기, 혹시 이 안에 있던 로자리오는 보지 못하셨나요?(그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미스터 그레이:로자리오 말입니까? (고개를 기울이며) 누락된 물건은 없을 텐데요. 마리안느:이상...하다. 분명 갖고왔는데...(가방을 다시 한 번 뒤적이며 찾다가) 혹시 죄송하지만, 한 번 찾아봐주실 수 있으신가요? 세탁 전의 과정에서 어딘가 떨어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미스터 그레이:... 알겠습니다. 일단 세탁실에 물어보도록 하죠, 그럼. 이후 그레이는 적당히 인사하고 자리를 떠납니다. 당신은 이제 [ 서관 / 동관 / 마구간 / 보트 보관소 / 다이닝 룸 ] 을 갈 수 있습니다.
마리안느:...(보트 보관소부터 가볼까..단장을 하고서 이동한다.) 단장한 마리안느가 도착한 곳은 보트 보관소. 오늘도 적막합니다. 쏴아아아… 파도소리와 바람소리가 귓가를 스칩니다. 보관소 안에 들어가보면 덩그라니 놓여진 보트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벤자민을 만나려면 그의 오두막으로 가야합니다. 마리안느:(어제의 잠긴 오두막 앞으로 가 문을 두드린다. 똑똑.) 벤자민의 오두막은 물론 닫혀 있습니다만, <돌파> 판정을 해볼까요! 힘주어 열어보니 허술하게 짜인 문은 끼이익, 하고 열립니다. 그리고 벤자민은 오늘도 알콜에 절어 바닥에 완전 뻗어있습니다. 여러가지 판정을 사용해 벤자민을 깨울 수 있습니다. 마리안느:(일단...흔들어 깨워본다.) 저기요...? 실패. 재판정이나 다른 판정의 시도가 가능합니다. ...
(주변에...무언가 담을만한 그릇이나 병 같은게 있을까?)
실패. 대신 마리안느는 방안에서 다 시들어빠진 꽃병 하나를 발견합니다. 마리안느:(꽃병을 들어 살펴본다. 안엔 물이 들어있진 않겠지?) 안에 물이 들어 있습니다만... 오래된 것 같습니다. 마리안느:...흠...(벤자민을 한 번 보고...꽃병을 들어 바닷가에서 꽃병에 바닷물을 조금 더 퍼와 벤자민의 얼굴에 부어본다..) 현명한 마리안느는 꽃병에 바닷물을 받아 벤자민의 얼굴에 붓습니다. “ 으악?! 어푸푸푸... 푸푸... 뭐, 뭐야? ” 마리안느:어머, 죄송해요.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으시기에...괜찮으신가요? “ 뭐... 야, 넌. 어제 여자... 또 왜 왔어? 마실 술도 안 주면서. ”
마리안느:어제 하신 말씀이 조금 신경쓰여서요. 디안타가 집 밖으로 나온 적이 없다는 얘기요. 당신의 말에 우선 그렇게 단언한 후, 디안타가 밤마다 몽유병으로 인해 저택을 돌아다니고는 했다는 정보를 알려줍니다. 저택 바깥에 나오는 꼴을 제대로 본 적이 없고, 그래서 지금도 붙박이 귀신이 되어 저택 안을 떠돌고 있는게 아니냐는군요. “ ... 몇 번 본 적은 없지만 그 여자는 전혀 행복해보이지 않았어. ”
“ 누가 이 섬에서 행복할 수 있겠어. 배를 타고 나간 것도 섬에서 도망치려고 그런거 아냐? ” 그 말을 끝으로 벤자민은 다시 코를 골기 시작합니다. 마리안느:행복할 수 없다니요, 저기요? 또 자요? 또 물을 부어도... 벤자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말 답이 없네요. (저택을 돌아다니고 있다고..동관으로 다시 가보자.)
당신은 답이 없는 벤자민을 두고 동관으로 가보기로 합니다. 동관은 처음 왔을 때보다 훨씬 스산한 것 같습니다. 온통 자줏빛으로 꾸며진 동관에서는 희미하게 백합 향이 납니다.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이 건물은 정말 낡았군요. 복도를 지나가던 당신은, 한 켠 구석에서 거뭇한 자국 같은 것을 발견합니다. 이게 굳은 핏자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는 머리카락 한 올도 떨어져 있습니다. 검은 머리카락입니다. 알 수 없는 위화감과 기묘함에 뒷목이 선뜩해져 옵니다.
마리안느:...?(혹시 발자국은 어딘가로 이어져있나?) 하녀장 사라입니다. 무기질적인 시선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라는 천천히 마리안느에게 다가가 머리카락을 주워듭니다. 그리고는 입을 엽니다. 하녀장, 사라:돌아가세요. 선생님이 계속해서 홀로 동관을 돌아다니는 것을 아신다면 주인님께서 별로 좋아하지 않으실겁니다. 마리안느:하지만, 공작님께서는 제게 동관에 오는 것을 허락하셨는걸요. 하녀장, 사라:돌아가십시오. 저는 공작님께 이 이상의 명을 받은 적 없습니다. 마리안느:(일단은 물러나기로 한다. 이곳에서 밉보였다간 당장 머무를 곳도 없으니....) 어디선가 다시 그 선뜩한 웃음소리가 들려온 것도 같습니다.
마리안느:...?! 또..(귓가에 맴도는 웃음소리에 계속 신경이 쓰인다. 혹시나 사라가 비웃은 건 아니겠지?) 그것이 사라의 목소리라고 특정지을 수는 없었습니다. (동관을 나온다. 어제 가보지 못한 다이닝 룸으로 갈 수 있나?)
물론! 갈 수 있는 마리안느는 다이닝 룸으로 향합니다. 공작은 티타임을 즐기며 장부를 들여다보고 있네요. 당신을 보고 사람좋은 웃음과 함께 자리를 권합니다. 곁에서 시중을 들고 있던 사용인이 당신에게 잘 우린 아쌈 티와 버터쿠키를 내어옵니다. 마리안느:...감사합니다.(잔을 들어 손으로 가볍게 감싸쥐었다. 한 모금 입에 대고는 공작에게로 시선을 준다.) 이곳에서..일을 하시고 계셨나요? 모르고 제가 불쑥 찾아와 방해를 한 것은 아닌지..
공작을 보니, 그는 결혼 반지를 끼고 있지 않으며 사냥복 차림입니다. 곧 사냥이라도 나가려는 걸까요? 당신의 말에 여전히 사람 좋아보이는 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클레멘스 공작:... 그렇게 복잡한 일은 아니니 괜찮습니다. 아내의 친구 분이신데, 당연히 대접해 드려야죠. 마리안느:(그 말에 조용히 미소 짓고는) 그제와는 다른 분위기의 차림이시군요. 어디로 나가실 예정이신가요? 클레멘스 공작:조금 뒤에 사냥을 가려고 합니다. 이곳에서 얼마 안되는 저의 취미거든요. 마리안느:사냥...이요?(어제 올리버에게 지나가듯 들은 말이지만 한 번 더 확인하듯 묻는다.) 클레멘스 공작:네, 사냥 말입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디 이상... 하게라도 들리시는 겁니까? (갸우뚱) 마리안느:(깜빡) 아아, 아닙니다. 그저 제 주변에는 사냥 같은 고급스런 취미는 갖고 계신 분이 몇 없어서, 그저 신기함에 물었습니다. 어떤 걸 주로 사냥하시나요? 클레멘스 공작:아아... 그렇군요. 그냥 사슴이나 새 따위의 작은 동물입니다. 왕년에는 제가 곰을 잡은 적도 있었습니다만... (갑자기 자랑) 요즘은 아무래도 예전같지 않아, 힘들더군요. 마리안느:곰이라니, 대단하시네요. 전문 사냥꾼도 쉽게 잡기 힘든 것이 곰이라면서요?(맞장구 쳐줌) 그런데 혹시...이런 말씀 드리기 실례일지 모르겠지만, 혹시 제가 동관에 가는 것이 불편하신가요?
이곳에 오기 전, 다시 없을 친구의 흔적을 되새기고 싶어 동관에 들렀더니 그곳의 하녀장께서 제게 돌아갈 것을 청하더군요.
클레멘스 공작:... ... 이런, 그렇습니까? 무언가 오해가 있었나 보군요. 저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그 슬픔 때문에 동관에 잘 가지 않았죠. 때문에 관련해서 업무는 모두 하녀장에게 맡겼습니다. 그녀는 믿을 만한 사람이니까요.
아무래도 그녀는... 제가 언젠가 아내의 흔적을 되새길 용기가 생겼을 때 이전 모습 그대로를 보존하고자 그런 태도를 취한 게 아닐까 싶군요. 그녀가 다소 무례했더라도, 부디 이해해주십시오.
마리안느:아아....그런 것이었군요.(그의 말에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저는 괜찮습니다. 오히려 제가 혼자 나돌아다니는 것이 폐가 되었을까 조심스러웠는걸요. 그렇다면 공작님께선 하녀장께 지시를 내리신 적은 없단 말씀이시죠?
클레멘스 공작:물론입니다. 저는 동관에 가지 않고 있으니까요. (씁쓸하게 읊조리며 너털 웃음을 짓는다.) ... 아직도 아내를 잃은 슬픔을 견디지 못하는 못난 자여서 말입니다. 부끄럽습니다만... 마리안느:오, 아닙니다. 공작님께서 얼마나 제 친구를 사랑해주셨는지 알 수 있는 걸요. 아, 그러고보니...저택에 유령이 있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혹시 공작님은 아시나요? 클레멘스 공작:그런 소문이 있습니까? 저는... 글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뜬소문이 아닐까요. 마리안느:후후, 역시 그렇겠죠? 괴담 같은 것은 아무래도 쉽게 흥미를 가질 주제이니, 혹 그게 실화인지 궁금했답니다. 그리고...(문득 생각나 일전에 침대 아래에서 주운 귀걸이를 꺼내 보여준다.) 혹시..이 귀걸이는 디안타의 것이 맞나요?
클레멘스 공작:예? (귀걸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아아... 아마 제 아내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만, 실례지만 그것을 어디서 구하셨는지...? (조금 의심의 눈초리가 된다.) 마리안느:이상하게도 제가 묵던 방 침대 아래에 떨어져 있더군요. 디안타와 함께 학원을 다닐 적에 맞춘 것인데, 당시에는 통 끼고 다니는 것을 보지 못해 오랜만에 보니 반가워하던 참이었습니다.(의심스런 눈빛에도 그저 웃는 낯이다.) 혹시 디안타가 현재 제가 쓰던 방을 사용한 적이 있나요?
클레멘스 공작:아니요, 그곳은 손님 방이어서 그럴리가 없습니다만... 왜 그런 곳에 있었는지 영문을 모르겠군요. (곰곰이 생각하다 다시 사람좋은 웃음으로 돌아와선) 아무튼 선생님께서 발견해주셔서 다행입니다. 대화를 이어가다, 문득 생각난듯 공작은 이렇게 말합니다. 클레멘스 공작:... 참. 연락선에 대해 말인데. 아마 내일 새벽, 야간편으로 도착할 것 같습니다. 클레멘스 공작:저번 사고로 저희도 물자를 많이 공급받지 못한 상황이라, 빠르게 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궁금해 하실 것 같아 전해드렸습니다. 이제 내일 새벽이면 돌아가실 수 있겠죠.
클레멘스 공작:모처럼 오셨으니 가시기 전까지 푹 쉬시죠. 이 저택은 낡아서, 어느 모서리에 발이 걸려 넘어질지... 모르지만요.
괜히 들쑤시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는 말을 정중하게 돌려서 하는군요. 마리안느:...말씀 감사합니다.(작게 허리를 숙여 인사한 후 다이닝 룸을 나온다.) (마구간으로 갈까. 발걸음을 돌린다.)
마구간은 어제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입니다.
오늘도 칙칙한 인상의 마구간지기 로버트가 말들에게 여물을 주고 있습니다. 마리안느:안녕하세요, 로버트 씨.(어제의 눈빛이 생각나 조금 거리를 둔 후에 천천히 다가간다.) 당신의 인사에도 좀처럼 입을 열지 않습니다. 로버트는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의 다리에 대해서나, 주인마님인 디안타에 대한 것을 물어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마리안느:(인사를 받아주시는구나. 조금은 안도감이 들었다.) 로버트 씨가 이곳의 지기라고 들었습니다. 어제도 마주쳤었지요? 마리안느:다름이 아니라...저는 디안타의 친구인데, 이곳에 와서 그 아이의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그때 수색을 나가신게 로버트 씨라고 하셔서...혹시 당시의 일을 물어도 되는지요. 그 말에 로버트는 갑자기 퍼뜩 고개를 들어 당신을 쏘아봅니다. 그의 입이 열리고 벽력같은 소리가 터져나옵니다. “ 지금 당시의 일에 대해 묻는 거요, 이 다리를 보고도! ” “ 이건 그 여자를 구하려다 이렇게 됐어. 고작 미친 여자 따위를 구하려고! ” ‘미친 여자’ 라니, 설마 디안타를 가리키는 말일까요? 단어 선택의 무례함은 둘째 치고서라도, 왜 미친 여자라고 하는 걸까요. 마리안느:아..앗, 죄송합니다. 당신의 고통을 들쑤시려 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혹시 말씀하신 '미친 여자'는...디안타를 말씀하시는 걸까요? 왜... “ 왜냐니, 미친 여자를 미친 여자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하나? ” “ 정신이 나가서 매일 밤 그렇게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더니... 죽어서도 유령처럼 저택을 떠나지 못하더군. ” 로버트는 '그런 여자는 단명한 게 놀랍지도 않다'는 식으로 중얼거리더니 홱 마구간 뒷쪽으로 사라집니다. 마리안느:...(가버렸네. 이 이상 묻는 건 실례인가?...벤자민에게 들었던 내용이 생각나 껄끄러워져 서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응접실엔 하녀들이 한창 청소 중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슨 대화중이었는지는 몰라도, 어떤 하녀애가 그렇게 말하자, 삼삼오오 모여서 먼지를 털고 창문을 닦던 하녀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트립니다. 마리안느:(가까이 가면 또 경계하려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이야기를 들으려던 당신은, 곧 하녀들에게 발견됩니다. “ 어머... 여긴 아직 청소 중이에요, 선생님. ” 마리안느:앗, 아아..청소에 방해가 되는 걸까요. 죄송합니다. 방금 당신들께서 하신 얘기가 흥미로워 저도 모르게 그만... 유령에게 잡혀간다..는 말은, 무엇인가요?
“ 우후후, 설마 유령이란 말을 정말 믿으시는 거예요? ” 당신이 물으니, 놀리는 듯한 어투로 답하더니 일제히 웃습니다. 유령에 대한 소문은 몇몇 들었는걸요. 허나 누군갈 잡아간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어, 궁금해 물었습니다.
당신에게 묘한 비아냥과 비꼼이 말 끝마다 따라붙더니, 어떤 하녀가 선심쓰듯 알려줍니다. “ 하긴 아주 헛소문은 아니에요. 유령 이야기. ” 동관에 아무도 들어가지 않은 날, 멀쩡했던 유리장식품이 바닥에 떨어져 깨져있고, 액자들이 산산조각 나있기도 했다고요. 하녀들은 저들끼리 무어라 키득이고 속닥거리더니, 청소가 끝났다며 당신을 두고 우르르 몰려나갑니다. 마리안느:...?(저들의 태도엔 하나 신경쓰지 않고, 그저 들은 말에만 초점을 두어 생각했다. 그것도 얼마 전 일이라고...) (서재로 이동한다.)
들어서자마자, 무언가 짤그랑!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
슬쩍 보면 그것은 당신이 주웠던 디안타의 프리지아 꽃 모양의 귀걸이입니다. 그 나머지 한 짝을 왜 저 하녀가 가지고 있지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면,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있습니다. 손에 든 것, 혹시..?
메이드, 릴리벨:호... 혹시, 라니... 이 이건 제 거예요! 릴리벨은 안절부절 못하다가 냅다 도망가버리고 맙니다. 쫓아가면, 릴리벨은 꼭대기 층의 하녀방으로 도망갑니다. 그리고 낡아빠진 보석함을 어딘가에 숨기려다가 당신과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맙니다. 실랑이 끝에 보석함이 바닥에 와르르 쏟아져버리고 맙니다. 마리안느는 바닥에 쏟아진 것들을 보고 그 자리에서 굳습니다. 바닥에 쏟아진 물건들 중에는 당신의 짐가방 안에 있었던 로자리오 뿐만 아니라... 당신이 기억하는 디안타의 물건들도 제법 있었기 때문입니다. 메이드, 릴리벨:윽.. 잠깐... 저기, 집사장님에겐 말하지 마세요. 전 여기서 잘리면... (갑자기 빌기 시작한다.) 마리안느:...왜 그런건가요? 이것들 다, 언제부터...?(비는 모습에 그저 차분한 어조로 뱉고선 내려다본다.) 메이드, 릴리벨:언제부터냐니... 주인마님 돌아가시고 나서요. 어차피 이까짓 거 훔쳐도 아무도 모르고... (꽁알) 마리안느:이런 걸 몇번이고 하는데 아무도 모를리가요. 그럼...그 전에 침대 밑에서 뭔갈 주우려 한 것도, 혹시 이걸 찾고있었나요?(제가 갖고 있던 귀걸이 한 짝을 보여준다.) 메이드, 릴리벨:그......... 러면 어쩌실 건데요! 주인도 없는 물건 좀 가져간다는데...! (급 적반하장) 마리안느:주인 있는 물건도 가져가셨잖아요?(어리둥절) 애초에 주인이 없다고 누군가의 허락없이 그걸 막 가져가도 되나요? 애초에 훔쳐서 뭘...혹시 어딘가에 팔아넘길 생각이셨나요?
메이드, 릴리벨:이... 이건 돌려줄게요! 그럼 됐잖아요. (로자리오만 홱 넘겨준다.) 그거야 당연하죠, 이게 팔면 얼만데 참... 마리안느:(흠...가만 보다가) 혹시, 당신이 그 동관에서 유령을 봤다던 분이신가요? 메이드, 릴리벨:그... 그건 왜요? (힐끔 힐끔 경계하는 표정으로) 당신... 유령같은 거에 관심이 있어요? 마리안느:조금은요.(상대의 표정에 조금 미소를 띠더니) 그래서...그거 진짜인가요? 하얀 옷에 맨발인 유령을 보았다는게? 메이드, 릴리벨:그런... 데요. 분명... 하얀 옷에 맨발이었어요. 으으... 저 거기 자주 가는데. 미치겠다니까요. 또 유령이 나오기라도 하면...... (생각만 해도 싫은지 부르르 떤다.)
마리안느:들어보니 의외의 시간에 들렀던 것 같은데. 언제쯤 보신건가요? 메이드, 릴리벨:... 바 밤에...? 그래야 가져가기도 편하니까.. (쫑알쫑알대다가 핫,) 아니,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무튼 나가요! 이제 다 물어봤으면...! (꾹 꾸욱 마리안느를 방 밖으로 밀어버렸다.)
마리안느:아, 아아,(밀리는대로 얌전히 밀려나와 문 앞에 서서는) ...어차피 말하지도 않을건데...(그래도 로자리오를 찾아 다행이라는 마음이다. 밤에 유령이 나온다고... ...장소를 벗어나며 지난 밤의 꿈인지 뭔지 모를 것을 떠올린다. 그건 분명 디안타였어.) 그렇게 생각하며 둘러보고 나니 어느새 어두워져 있고... 유령은 정말로 유령일까요? 사실은 정말로 진실일까요? 디안타는 정말로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걸까요? 숨죽인 비웃음들에 둘러싸여 천천히 숨이 막혀옵니다. 마치 거미줄에 붙잡혀 빠져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발버둥 치는 곤충이 된 것만 같습니다. 불쾌함이 척추를 타고 올라와 등골을 서늘하게 훑습니다. 디안타는 이런 곳에서 살았군요. 자그마치 십 년 동안이나. 이곳에 도착한 첫 날 떠올렸던 감상이, 이제는 다른 의미로 반복됩니다. 이 저택의 모두가 그녀를 더할나위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하지만... 정말로 그녀의 편으로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비밀과 거짓으로 점철된 이 곳 메리어빌에서 아마도, 그녀는 지독히 외로웠을 것입니다.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아마도 이것이 마지막일테죠. (동관으로 가봐야겠어. 혹시 오늘도 문이 잠겨있나? 문고리를 잡고 열어본다.)
당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고리를 잡고 열어봅니다. 마치 ‘꿈이라도 꾼 거 아니야?’ 라고 비웃는 것 같아요. 바깥에 인기척은 당장 없지만, 조용히 다녀야 할 것 같습니다. 마리안느:(조심히 나갈 수 있을만큼만 문을 열어 빠져나온다. 복도를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시야는 트여있을까?) 복도는 조금 어둡지만, 드문드문 등불이 달려 있어 다니는데엔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마리안느:(그나마 다행...발소리가 나지않게 살금살금 움직이자.) 그래요, 당신에게는 마지막으로 확인해야 하는 진실이 있습니다. 동관은 낮에 왔을 때에도 산뜻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오밤중에 보니 더욱 스산하고 섬뜩합니다. 삐걱, 삐걱. 걸을 때 마다 울리는 불길한 소리. 낡아빠진 나무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자신이 내는 소리만 들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당신이 걸음을 멈춘 후에도 삐걱이는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옵니다. 삐걱, 삐걱… 숫제 악기소리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소리가 위층, 즉 3층에서 들려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리를 따라가보면, 그 곳에는 유령이 있습니다. 그녀와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그녀는 백의(白衣)의 여사제처럼 떠돌아다닙니다. 걸음은 차라리 춤에 가깝습니다. 아주 느리고, 비틀거립니다. 열린 창 사이로 검은 바다의 밤바람이 불어오면 여자는 큰 원을 그리며 걷습니다. 여자는 노래를 부르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패합니다. 달싹이는 입술에서는 어떤 노래도 흘러나오지 못합니다. 야윈 어깨와 손 끝에서, 엉망인 머리칼에서, 백합 향이 납니다. 희고 창백한 몽유. 그녀는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요. 마리안느:...디안타...(조심스럽게 다가가 건드려봅니다.) 디안타:... ... (네 목소리와 건드리는 감각 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다. 비틀거리는 걸음, 두어 번 입술을 달싹이고, 멍하니 다른 곳을 응시한다.) 마리안느:...디안타...!(어깨를 잡고 흔든다. 제발, 일어나.) 디안타:(힘없이 흔들리다 공허한 눈빛을 네게 향한다.) ... 와줘, 마리안.. ... (마치 녹음된 목소리를 반복 재생하는 것 마냥 끊어지는 투로,) ... 마리안느:뭐라고? 무슨 말을 하는거야. 응? 이게 대체... ...디안타? 나 보여? 내 목소리 들려?(눈앞에 손을 휘젓는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대체 왜, 누가...) 디안타:... 보.. 이... (눈앞에 손을 휘저어도 전혀 반응이 없다. 아예 때려서라도 깨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 ... 무엇을? 아무것도, 없는데... 마리안느:...(꿈을 꾸고 있는걸까?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멍한 행동을 할 리가 없을텐데. 그렇지? 디안타.) (잠시 고민하다 뺨을 몇번 쳐보기로 한다. 어떻게 해서든 깨워야할 텐데.)
제법 큰 소리가 나고, 디안타는 퍼뜩 당신을 쳐다봅니다. 디안타:... ... ! (서서히 표정을 일그러트리더니, 눈동자가 굴러간다.) 무, 슨... 클레멘... ...
디안타...? 정신이 들어?
디안타:... 마리.. (멍...........) 마리... 안느? (믿기지 않는지 느리게 깜빡이던 눈이 점점 커진다.) 너, ... 아니, 정말...? 마리안느:(디안타. 디안타다. 내가 알고있는, 내가 기억하는 나의 친구. 멀쩡히 말을 건네는 모습에 미소를 지어 고개를 끄덕인다.)...응, 나야. 디안타:왜... 왜 왔냐. (?... 뜬금없이 꺼낸 말.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지 네 볼을 잡고 주욱 늘려도 본다.) ... 너 말야, 편지도 없더니... 마리안느:...? 당연히 너 만나러 왔지.(볼이 주욱 당겨져 문장의 반은 발음이 샐 지경이다. 네 손 위에 제 손을 겹쳐잡고서) ...편지는 너 여기로 오고나서 몇번이고 보냈는데, 답장도 안 한 건 너잖아...
그리고 나도 너한테 물을 거 많아. ...일단 여기서 나가자. 당장.
디안타:... ... 그 망할 자식... (뿌득, 네 대답에 이를 갈았다. 야위었지만 그런 태도는 이전의 디안타와 같았다.) 그 자식이 거짓말을 했어. 아무도 편지같은 건 보내지 않았다고... ... 네가 날 잊은 줄 알았어.
... .... ... (오랜 시간을 몽유에 잠겨있다 보니 한 순간 다시 멍하니 있다가 퍼뜩,) 아. 그래, 나가야지.
당장 이딴 곳은 탈출해야... (그러나 자신이 그것을 시도하지 않은 건 아니었기에, 목소리엔 어딘가 막막함이 묻어났다.)
마리안느:...잊었을리가, 없잖아. 얼마나 걱정했다고...나는 네가 이런 곳에서,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 살 줄은, 정말, ... ...너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조금만 더 입을 열면 눈물이 왈칵 쏟아져내릴 것만 같았다. 아, 이러면 안되지. 나는 이제 옛날의 그 울보가 아닌데. 눈물을 삼키려 숨을 꾹 눌러내렸다.)
...새벽 내로 연락선이 올 거야. 너를 찾았으니, 이제 함께 나가면 돼.(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디안타:... 하하, 또 그 얼굴 한다. 너 이제 울지 않는다고 했잖아. (픽 힘없는 소리와 함께 웃었다. 아주 오랜만에 지어보는 미소.) ... ... 그러냐... 나 죽은 사람이 됐었구나. 여기서. (드문드문 기억이 난다. 그에게 반항하고, 화를 내고, 도망치려고 해도, 얼마안가 붙잡혀 감금되던 생활들.) 마리안느. (힘주어 잡은 손은, 그러나 너를 걱정하는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 함께 나가다 들키면? 내가 그걸 안 해봤을 거라 생각해?
마리안느:(픽 웃는 모습에도 따라 웃을 수가 없다. 그 당차던 애가 왜 이렇게 야위었니. 당장이라도 네 손을 잡고 이 저택을 빠져나가고 싶건만. 힘없이 잡힌 손을 내려다본다.) 그렇다면? 너는 계속 여기에 남아있을거야? 그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디안타.
디안타:그냥...... (이곳에서 나가겠다고. 의지를 불태우던 이전의 모습과 달리 지금은, 네 물음에 그저 조용히 고개를 떨궜다.) 모르겠어. 너까지 붙잡히게 둘 수는 없잖아. 연락선이 오는 시간이 곧입니다. 만약 도망칠 생각이라면 그 전이어야 겠죠. 그러나 연락선을 맞이하기 위해 아직 저택은 완전히 잠들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시선을 끌지 않고 탈출할 수 있을까요? 만약 저택에 불이 나면 주의가 분산될테니, 저택 사람들은 두 사람의 탈출을 바로 눈치채지 못할 것입니다. 당장 머무르는 사람이 없는 동관은, 그 장소로 적합하겠죠. 마리안느:...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뭐가 문제니, 네 탈출 계획에 내가 같이 있는 건 이번이 처음이잖아? 성공할지 안 할지 그건 모르는 거라고. 너도 잘 알텐데. (말을 마치고 손을 놓고서 복도에 등잔이 어느정도 있는지 세어본다. 이 건물은 나무로 만들어졌으니, 잘 탈 거야.)
디안타:... .... ... ? (갑자기 무언가를 세는 것 같은 네 행동에 고개가 기울어진다.) 너... 뭐 하려고?
마리안느:(기름등 하나를 들어 남은 양의 기름을 입구에서 방의 중앙까지 뿌린다.) 이곳을 태울거야. 그렇다면 저택 사람들은 불을 끄려 몰려올테고, 우리는 그 사이에 배에 오르면 돼. 챙겨나갈 것이 있으면 지금 챙겨둬. 디안타:... ? ... ... ? 진심으로? 야, 여기 불을 붙인다고... (눈이 동그래진 채 네가 기름을 뿌리는 걸 바라본다.) ... 너... 너 말야, 학원 다닐 때는 그렇게 울보에 소심하더니... 어떻게 이런 미친 생각을 했냐? (이런 계획은 생각도 못했다며 어이없어 하고, 하지만 어쩌면 함께 탈출할 거라는 기대를 또한 안고.) ... 진짜.. 웃기네.
나도 할래, 그럼. (자신도 힘내어 기름등을 들고, 바닥에 뿌려대기 시작했다.)
마리안느:그 학원을 졸업한지도 10년이 지났잖아. 이런 것도 다 너희한테서 배운거지.(이런 때에도 농담조로 말한다. 오히려 나가길 거부한다면 더욱 막막했을텐데, 저를 따라 움직이는 너를 보니 안심이 되었으리라. 남은 곳에도 기름으로 길을 낸다.) 가져갈 건 없어? 있을텐데.
디안타:뭐... 없어. 다 어디론가 사라졌고. (조금씩 기운이 나는지, 네 말에 고개를 저으며 가만 주먹을 쥔다.) 원하는 거라면 그 자식을 패죽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지. 이 힘으론 아무것도 안 될테고. 마리안느:...그래. 나도 맘 같아선 네 대신 하고 싶지만 나도 그런 힘은 없어서...그리고 이거. 빈손으로 나가긴 좀 허전하지 않겠니?(제가 들고 온 로자리오와 귀걸이를 네 손에 쥐여준다.) 디안타:네가 그러면 그 녀석에게 맞아 죽을 걸. 포기해라. (네 맷집으로는 무리라며, 가볍게 웃지만 그런 적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다 멀뚱... 네게서 로자리오와 귀걸이를 받고는) ... ? 이거 어디서 찾았냐?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마리안느:으, 죽는 건 끔찍해.(가벼운 투로 말하곤 고개를 젓는다.) 로자리오는 너가 두고간 거, 귀걸이는 여기에 와서 찾았어. 어떤 아이가 갖고있더라.(그 사람이 누군지는 말을 해주진 않을 모양이다.
어느덧 건물 입구까지 기름을 뿌려 선을 그어놓고, 남은 기름은 현관에 모두 쏟아내고선)
탈출할 준비는 다 되었니?
디안타:... 찾아줘서, (고맙다. 뒷말은 작았다. 되찾은 로자리오를 제 목에 걸고 귀걸이를 잠시 만지작거리다 품에 넣는다. 오랜만에 가진 '나의 물건들'.) ... ... (불을 붙이기 전 그렇게 묻는 너를 바라보는 눈빛엔 이전과 같은 생기가 돌았고 당연하게도, 끄덕인다.) 물론.
여기와선 항상 그 생각 뿐이었어.
자줏빛 벨벳이 타오릅니다. 백합 향이 사그라듭니다. 파도소리는 불이 타오르는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습니다. 둘은 불타는 저택을 뒤로 하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달립니다. 새벽 이슬에 젖은 풀들이 종아리를 스치고 여름밤의 서늘한 공기가 폐 속에 가득 들어찹니다. 오랫동안 저택 안에서만 지내왔던 디안타는 조금 뒤쳐지고 맙니다. 마리안느는 디안타의 손을 잡고 끌어 달립니다. 등 뒤로 비명소리와 거센 불길이 타오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가사도 멜로디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노래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흰 옷을 입고 밤이 되면 맨발로 집 안을 내내 떠돌아다니는 여자들의 노래입니다. 우선 보트 보관소에 도착한 후 보트를 힘껏 밀어 바다로 내보냅니다. 발목과 종아리가 젖어들지만 신경쓸 겨를도 없습니다. 두 사람은 보트에 올라탑니다. 검고 넓은 밤바다의 물살을 가르고 나아갑니다. 지금쯤이면 두 사람의 도주를 눈치챘을지도 모르겠군요. 멀리, 물 건너 타오르는 대저택은 아름다워보이기까지 합니다. 불은 밝고, 물은 검습니다. 곧 연락선과 만날테고, 저들은 결코 두 사람을 쫓아올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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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 즉 디안타는 클레멘스 공작과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한 후 서서히 정신착란에 시달리기 시작합니다. 불행한 결혼생활 때문입니다. 공작은 신경질적이고 감정 기복이 심한데다가 앞뒤가 다른 사람입니다.
대외적으로는 성품이 너그럽고 선한 호인을 연기하고 있지만 돌아서면 전혀 그렇지 않지요.
디안타는 그가 바라는 우아한 아내가 아니었고, 실망한 공작은 힐난하며, 때로는 손찌검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매일같이 디안타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학대했습니다.
공작은 그녀를 전혀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공작이 디안타를 홀대하자, 공작가의 사용인들 또한 그녀를 멸시하고 냉대했습니다. 오랫동안 고립된 폐쇄적 공동체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외부인을 배척하고 따돌리기 마련입니다.
이야기를 나눌 친구, 가족도 하나 없이 탈출도 못하는 감금생활이 십 년 동안이나 지속되었습니다.
디안타에게는 편지도, 전화도 금지되거나 그녀 몰래 처분되었습니다.
개인적인 물건들, 아끼고 소중했던 것들은 어느새인가 망가지거나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렇게 메리어빌 섬에서 디안타는 서서히 미쳐갑니다. 환각을 보고, 환청을 듣습니다. 이젠 자신이 누구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신경쇠약과 광증에 시달리기 시작한 후부터 그녀를 향한 박대는 점점 더 심해져만 갔습니다.
소문이 새어나갈 것을 두려워한 공작은 삼 년 전, 숫제 그녀의 사망을 위조하고 그녀를 아예 죽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공작과 집사장인 그레이, 하녀장인 사라를 제외하고 저택의 다른 사람들은 디안타가 조각배를 타고 근해에 나갔다가 갑작스러운 폭풍우에 그만 배가 가라앉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녀는 살아서 다락방에 갇혀있습니다.
✎:모두가 잠에 들면 그녀는 문을 열고 나와 맨발로 집안을 배회합니다. 이따금 그녀의 그림자를 목격한 사람들은 메리어빌 대저택을 떠도는 유령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녀는 그렇게 유령으로, 다락방의 미친 여자로 살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찾아오기 전까지는요.